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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너의 ‘살 권리’만큼 나의 ‘죽을 권리’도 절실하다

등록 2015-01-02 15:31수정 2015-01-02 22:01

지난해 12월23일 사망한 영국의 존엄사 운동가 데비 퍼디(오른쪽)와 그의 남편 오마 푸엔트의 2008년 다정했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12월23일 사망한 영국의 존엄사 운동가 데비 퍼디(오른쪽)와 그의 남편 오마 푸엔트의 2008년 다정했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정의길의 세계만사 ④
‘존엄사 운동가’ 데비 퍼디 사망으로
다시 주목받는 ‘죽을 권리’
오랜 논란 거치며 조금씩 제도화
이제 우리 사회도 본격적으로 토론 필요
여러분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도 스스로 선택해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란이 되는 이른바 안락사, 존엄사에 관한 문제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병 등으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지고 고통받으며 숨만 쉬는 삶을 유지하기보다는 존엄있게 스스로 삶을 마치겠다고 하는 주장은 전후 서구 사회에서 오래된 논란이었습니다.

영국의 존엄사 운동가 데비 퍼디 사망

영국의 유명한 존엄사 운동가 데비 퍼디가 지난해 12월23일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 51살. 20년 동안 다발성 경화증을 앓아온 그는 음식 섭취를 거부하다가 이날 숨졌습니다. 그가 평소 주장해온 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삶과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남편 오마 푸엔트는 같은 달 29일 성명을 내어 아내 퍼디의 죽음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아내이자, 누나이고, 이모이고, 친구였다”고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그는 특히 퍼디가 지난 1년 동안 치료를 받아온 영국 브래드포드의 마리 큐리 호스피스에 대해 특별한 감사의 뜻을 전하며 “데비의 말년을 그가 원하던 대로 평화롭게 존엄있게 지내도록 허락했다”고 치하했습니다.

퍼디는 평소 주장해온 죽을 권리를 영국 의회로부터 받아낸 투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퍼디는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어 존엄사를 도와주는 스위스의 병원에 가는 것을 자신의 남편이 동행하고 도와줄 경우, 그가 처벌받을지 여부를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타인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도울 경우 자살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는 당시 영국 법이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이죠.

퍼디의 이 주장은 영국 상원으로 하여금 조력 자살에 관한 법의 전환점을 만들게 했습니다. 영국 상원은 11월7일에 법적인 감시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도움받을 수 있는 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009년 퍼디가 자신의 남편이 안락사를 도울 경우 기소될 것인지 확실히 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영국 대법원은 관련법이 투명성이 부족해 개인 및 가족의 삶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하고, 이와 관련된 기소 정책 지침을 만들라고 검찰총장에 명령했습니다. 영국 검찰은 2010년 2월에 그와 같은 성격의 사건을 기소할 때에 고려해야 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죽음을 도와주는 사람의 동기, 죽는 사람이 자신의 자살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혀, 조건부로 존엄사를 허락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 법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자살을 부추기거나 도와주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합니다. 퍼디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의사, 작가, 배우, 목사, 정치인 등 약 80여명은 지난달 27일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공동서한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압도적 다수”가 현재 존엄사에 관한 법의 개정을 지지하며, 의회는 이 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할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전 캔터베리 대주교인 로드 경, 유명 작가인 이안 맥이완 등 서명자들은 영국에서 불치병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 10명 중 1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위해 안락사를 도와주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가고 있다며, 의회에서 존엄사를 허락하는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퍼디는 죽기 전 <비비시> 방송과 마지막 인터뷰에서 “고통스럽고, 불편하고, 충격적이며, 이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며, 자신의 병세 진전에 따라 악화되는 삶의 조건에 맞춰 살아가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이는 내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이런 식으로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문제이다”고 말했습니다. 즉, 스스로 존엄있게 죽는 것도 자신의 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존엄사 논란

프랑스에서는 ‘죽을 권리’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내 도린에게 쓴 ‘D에게 보낸 편지’로 성애 관계를 공적인 경지로 승화시킨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왼쪽)는 2007년 불치병의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말년의 고르-도린 부부. 한겨레 자료사진
프랑스에서는 ‘죽을 권리’에 관한 논의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아내 도린에게 쓴 ‘D에게 보낸 편지’로 성애 관계를 공적인 경지로 승화시킨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왼쪽)는 2007년 불치병의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말년의 고르-도린 부부. 한겨레 자료사진
퍼디가 죽기 2주일 전 쯤인 지난달 12일 프랑스에서는 의사들이 불치병 환자들에게 죽을 때까지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처방하는 것을 허락하는 법안이 제안됐습니다. 안락사나 존엄사는 프랑스에서 불법이나,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은 이 문제를 재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2005년에 제정된 프랑스의 관련 법은 본인이 생명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거부해서 죽음을 초래하는 수동적 안락사를 합법화했습니다. 새로운 법안은 더 나아가, 의식이 있는 불치병 환자에게 “깊고 지속적인 진정 상태”를 허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이런 종류의 진정 상태가 특정한 경우에서 자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환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의사에게 환자의 존엄사를 도울 권리를 준 것이죠. 올랑드 대통령은 이 문제가 새해 1월에 의회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찬성을 시사했습니다.

지난 11월 프랑스에서는 80대 노부부가 호텔에서 “존엄있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3년 12월에는 프랑스 녹색당의 여성 대변인 산드린 루소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할머니가 다량의 약을 먹고 천천히 사망해가는 것을 9시간 동안 지켜봤다는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려 큰 충격을 줬습니다. 루소는 “할머니는 재미로 자살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는 적어도 자신이 존엄있게 죽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고통을 줄여줄 사람조차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를 선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루소는 “하지만, 할머니의 극심한 고통은 길었고, 의학적으로 처방받지 못한 고통을 9시간이나 견뎌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의료진이 스스로 선택하는 존엄사를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존엄사 운동의 대부, 케보키언

루소가 주장하는 것처럼 의료진이 존엄사를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뿐만 아니라 이를 직접 실천한 이는 미국의 잭 케보키언이라는 의사였습니다.

안락사나 존엄사라는 말이 나오면, 그는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타인의 자살 조력을 엄격히 금지하는 미국에서 이를 직접 실천해 징역까지 산 사람입니다.

케보키언은 적어도 130차례나 불치병 환자 등 타인의 자살을 도와줬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존엄사나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은 케보키언을 ‘닥터 데스’라고 부르며 그가 죽음을 선동하는 사악한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안락사 운동 진영에서는 용기있는 실천가로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죽음은 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곤 했습니다. 케보키언은 치매나 암 등이 걸린 사람들이 자신이 육체적·정신적으로 망가지기 전에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도움을 청하면, 당사자에게 약물 주입 등을 통해서 편하게 삶을 마감하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당신은 잭을 알지 못한다>에서는 케보키언이 존엄사를 결정한 사람들에게 약물 주입 등 모든 장치를 해준 뒤 스스로 그 스위치를 누르도록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알 파치노가 분한 케보키언은 병원에서 보통 실시되는 소극적인 안락사, 즉 생명유지 장치를 뗀 뒤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비판합니다. 의식을 잃은 불치병 환자에게 생명유지 장치를 분리한 상태는 환자에게 결코 평안하고 안락한 상태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그 상태는 보통 사람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아 배고프고, 숨쉬기도 불편한 상황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케보키언은 왜 사람이 자신의 고통을 줄이고 존엄있게 죽을 권리를 가질 수 없느냐고 항변합니다.

생전에 ‘죽음의 의사’라는 악명을 얻었던 잭 케보키언. 그러나 그는 사후에 존엄사 운동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생전에 ‘죽음의 의사’라는 악명을 얻었던 잭 케보키언. 그러나 그는 사후에 존엄사 운동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케보키언은 1999년 결국 자신의 존엄사 도움 역할과 관련해 기소되었고, 2급살인죄 유죄평결로 10~2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8년을 복역한 뒤인 2007년, 안락사와 관련한 어떠한 자살 행위에 대해 조언하거나 참여하지 않고, 또 조력 자살 절차를 부추기거나 토론하는 것도 금지한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됐습니다. 석방된 케보키언은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자신의 존엄사 신념을 계속 주장했습니다. 2011년 그는 간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급속히 병세가 악화되어 8일 만에 숨졌습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해 결코 생명유지 장치를 시도하지 않았고,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었다고 그의 측근들이 밝혔습니다.

영국병원협회의 켈라시 챈드 부회장은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끝내도록 도움을 주는 법 개정이 불가피하며, 2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영국의 관련 제도는 돈을 가진 사람들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가서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다가 존엄있게 죽는 반면에 돈없는 다수는 영국에서 고통 속에서 살며 고생하다가 죽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삶의 주인공이 바로 그 자신인 것처럼, 죽음 역시 본인에게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죽음은 삶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을 마감하는 한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삶이 자신의 결정과 의지로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죽음 역시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자연과 하늘의 섭리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안락사나 조력 자살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에스토니아, 알바니아에서 합법적입니다. 미국의 워싱턴, 오리건, 몬태나주에서도 허용하며, 2015년부터는 캐나다의 퀘벡주에서도 허용됩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를 진지하게 토론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요?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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