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 100여명이 ‘세계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승강장에서 ‘고속버스 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매표소에서 부산, 대구, 강릉 등지로 향하는 버스표를 구입해 버스에 타려 했으나 전동휠체어를 타고는 승차를 할 수 없었고, 고속버스는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일반 승객만 태우고 떠났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정부, 리프트 설치 비용 내년 예산에 반영 안해
장애인단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항의 집회
장애인단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항의 집회
지체장애 1급인 김은아(30)씨의 전동휠체어가 고속버스 출입문 앞에 멈춰 섰다. 출입문 폭은 휠체어보다 한 뼘 이상 좁았다. 다른 승객들은 쉽게 올라가는 3개뿐인 계단도 김씨에게는 ‘산’처럼 높았다. 서울에서 자란 김씨는 고속버스를 타본 적이 없다. 7살 때 자가용으로 고향인 광주에 다녀온 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김씨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고속버스가 있다면 광주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도 추석에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2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서초동 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1~13번 승차장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 150여명이 모였다.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 담요로 무릎을 덮고 목도리로 얼굴을 감쌌다. ‘세계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이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고속버스를 탈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오후 4시30~40분 부산과 세종시 등으로 출발하는 고속버스 10대에 세 자리씩을 미리 예약했다. 장애인들의 항의로 버스는 10분 정도 지연 출발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제정 이후 저상버스(시내버스)가 도입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 확대됐지만 아직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는 휠체어가 오를 수 없다.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고속버스를 타려면 기어가거나 누구 손에 들려서 타야만 한다”고 했다.
16억원이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 9월 국토교통부 용역을 받아 한국교통연구원이 진행한 ‘교통약자 지역간 이동 실태조사’에는 버스 1대당 4000만원으로 리프트 설치와 휠체어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개조 방법이 제시됐다. 하지만 정부가 2일 발표한 내년도 최종예산안에는 이 16억원이 결국 배정되지 않았다. 예산이 배정됐다면 내년에 버스 40대에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예산과는 “시범사업을 해도 전국 주요 구간밖에 운영할 수 없다. 리프트가 설치돼 있는 철도 이용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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