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교회 보듬손어린이집에서 지난달 28일 어린이들이 장난감 놀이터 개소식에 참석해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현판 가림막을 벗기는 동안 꽃가루를 뿌리고 있다.
[베이비트리] 보듬손어린이집의 놀이터 실험
“저기는 우리가 눕는 침대예요. 위로 올라가면 안 돼요! 여기는 바다예요~ 누구도 절대 안 빠지는 바다! 미끄럼틀을 타고 쭉 내려오면 바다에 풍덩 할 수 있어요.”
박서현(7)양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놀이터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서현양의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놀이터 공간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세계 놀이의 날’인 5월28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국공립어린이집 보듬손어린이집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이날은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7살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부모·선생님의 협조를 받아 완성한 자신들만의 장난감 놀이터를 대내외적으로 소개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놀이터에 가보니…
아이들이 꿈꾸는, 아이들이 놀고 싶은 놀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계단이 있고 다락방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김선우(7)양에게 물어보니 ‘나무동굴’이란다. 도자기공예를 하는 학부모의 재능 기부로 만든 ‘나무 동굴’은 아이들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는 자기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나무 기둥에 구멍을 판 형태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 공간을 가장 좋아했다. 놀이터에서 놀던 22명의 아이 중에 14명이 상당 시간 동안 ‘나무동굴’에서만 놀았다. 그만큼 아이들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좋아했다.
김온유(7)양에게 “이곳에서 가장 좋은 곳은 어디야?”라고 물으니 바로 “두더지굴이요”라고 소리친다. 온유양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곳에 아이들이 두더지처럼 쏙 들어가 놀고 있다. 온유양은 “두더지굴은 다른 놀이터에는 없어요. 친구들이 두더지굴을 생각해내서 만들었는데 저는 이곳이 제일 좋아요. 숨바꼭질을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이들은 자기들이 직접 가져온 장난감과 재활용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친구들끼리 모여 놀고, 레고 놀이를 하기도 했다.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무당벌레·해님·달님이 조명 형태로, 비행기는 조형물의 형태로 걸려 있었다. 벽면에는 또 조유근(7)군이 제일 좋아한다는 자석판이 붙어 있었고, 작은 집 모양의 공간에 아이들이 매달려 놀 수 있는 철봉도 있었다. 김선우양은 “키즈카페는 시시하고, 여기가 훨씬 재밌어요”라고 말했다.
나무동굴 등 비밀 공간 좋아해
실컷 놀다 쉴 수 있는 침대 찾아
어른 통제 벗어난 주도적 놀이가
아이들의 자립심과 협동심 키워 아이들이 말하는 놀이와 놀이터는? 아동 발달에 놀이는 필수적이다.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선 대부분 공감한다. 문제는 아이의 입장에서 즐거운 놀이와 놀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 어린이집에서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다. 이순희 보듬손어린이집 원장은 “놀이의 주체가 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논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며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놀이 프로젝트를 하며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 얼마나 잘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바깥에 나가 놀아야 아이와 잘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 어린이집에서 맞벌이 아빠들을 대상으로 그룹 면담을 해보니 아빠들은 주말마다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어디로 가서 놀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다. 이 원장은 “아이들은 그냥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한 것이지 꼭 바깥으로 나가야만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아이들에게 놀이와 놀이터는 상당히 유동적인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놀이공원을 찾는다거나 키즈카페를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놀이를 할 수 있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활동적인 것들을 하면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노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미술·피아노 선생님과 함께 하는 예능활동이나 책읽기, 글씨쓰기는 공부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깥놀이, 레고놀이, 얼음땡, 잡기놀이, 미끄럼틀, 공놀이, 팽이놀이, 강아지하고 놀기, 탑 블레이드, 미술 영역에서 선생님 없이 놀기 등은 놀이로 받아들였다. 놀이와 공부의 중간 영역으로는 피아노, 장구, 체육 시간 등을 꼽았다. 또 아이들은 놀이터에 장난감이 있는 것을 선호했고, 비밀 공간을 좋아했다. 한꺼번에 쉬거나 낮잠 자는 것처럼 일률적인 것 말고 놀이터에서 맘껏 놀다가 자기 스스로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침대 같은 장소를 요구했다.
어린이집 안 놀이터, 부모들 대환영
보듬손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한 이 ‘장난감 놀이터’를 토요일 어린이집 운영시간 안에서 이 어린이집 맞벌이 부모들이나 장애통합 자조모임 부모들 중심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공간을 지역 사회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고심하고 있다.
장난감 놀이터 개소식 날 만난 부모들은 한목소리로 이 놀이터를 환영했다. 4살 아이를 이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 한송희(35·은평구 대조동)씨는 “키즈카페 같은 곳에 가면 모르는 아이들과 잠시 어울려 놀지만 이렇게 어린이집 안에 놀이터가 있으면 아는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어린이집 안에 있는 놀이터라 안전에 대한 걱정을 덜 하게 돼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7살 김우진군의 엄마 강현주(33·은평구 불광동)씨는 “아이가 우리만의 공간이라며 너무 좋아했고, 개소식에서 자기가 안내요원을 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며 “놀이터가 부족한 은평구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생긴 것이 반갑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터를 만들어보고 장난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주도적으로 노는 것이 아이에게 자립심과 협동심을 키울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영숙(한국장난감도서관협회장·한국아동학회장)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보듬손어린이집의 이러한 놀이 프로젝트에 대해 놀이 활성화를 위한 좋은 모범사례라고 평가했다. 놀이 활성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온 서 교수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보육 종사자들의 교육 철학이 중요하다”며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실제로 생활에 적용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놀이는 어린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우는 훌륭한 밥이며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원동력”이라며 “갈수록 놀이터가 사라지고 놀이 동무가 없어지는 현실에서 어른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놀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놀이터 개소식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패션쇼 하는 모습.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나무동굴’.
실컷 놀다 쉴 수 있는 침대 찾아
어른 통제 벗어난 주도적 놀이가
아이들의 자립심과 협동심 키워 아이들이 말하는 놀이와 놀이터는? 아동 발달에 놀이는 필수적이다.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선 대부분 공감한다. 문제는 아이의 입장에서 즐거운 놀이와 놀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 어린이집에서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배경이다. 이순희 보듬손어린이집 원장은 “놀이의 주체가 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논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며 “한 달 동안 아이들과 놀이 프로젝트를 하며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 얼마나 잘 모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바깥에 나가 놀아야 아이와 잘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 어린이집에서 맞벌이 아빠들을 대상으로 그룹 면담을 해보니 아빠들은 주말마다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어디로 가서 놀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다. 이 원장은 “아이들은 그냥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한 것이지 꼭 바깥으로 나가야만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아이들에게 놀이와 놀이터는 상당히 유동적인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놀이공원을 찾는다거나 키즈카페를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놀이를 할 수 있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활동적인 것들을 하면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노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미술·피아노 선생님과 함께 하는 예능활동이나 책읽기, 글씨쓰기는 공부로 인식하고 있었다. 바깥놀이, 레고놀이, 얼음땡, 잡기놀이, 미끄럼틀, 공놀이, 팽이놀이, 강아지하고 놀기, 탑 블레이드, 미술 영역에서 선생님 없이 놀기 등은 놀이로 받아들였다. 놀이와 공부의 중간 영역으로는 피아노, 장구, 체육 시간 등을 꼽았다. 또 아이들은 놀이터에 장난감이 있는 것을 선호했고, 비밀 공간을 좋아했다. 한꺼번에 쉬거나 낮잠 자는 것처럼 일률적인 것 말고 놀이터에서 맘껏 놀다가 자기 스스로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침대 같은 장소를 요구했다.
놀다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침대.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계 놀이의 날이란?
우리나라 장난감도서관 최초 설립자이자 한국장난감도서관협회 창립자인 김후리다 박사가 우리나라에서 2000년부터 시작한 놀이장려 운동이다. 김 박사는 이 날을 국제장난감도서관협회와 유엔(UN)에 제안해 2001년 국제장난감도서관협회 이탈리아 총회에서 공식 채택돼 국제적으로 지켜지는 즐겁게 노는 날의 이름이다. 전 세계는 국제장난감도서관협회가 창립한 5월28일을 ‘세계 놀이의 날’로 정해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마음껏 놀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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