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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폭력 남편이 못낳게 했던 아이 “혼자라도 씩씩하게 키울래요”

등록 2010-11-19 19:49수정 2010-11-22 09:27

필리핀 이주 여성 카린(가운데 한복 입은 이·가명)이 지난 17일 전남 목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아들 준수(가명)의 돌잔치에서 준수를 안고 필리핀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리핀 이주 여성 카린(가운데 한복 입은 이·가명)이 지난 17일 전남 목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아들 준수(가명)의 돌잔치에서 준수를 안고 필리핀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카린의 ‘아기 돌 맞이’
시댁 멸시·낙태강요에 힘겨운 홀로서기 도전

필리핀에서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온 카린(28·가명)이 시집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해 4월15일이었다. 3년 전 결혼해 남편의 잦은 폭력에 시달리던 카린은 이날도 전남 영암군 영암행복한가정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는 남편 김영민(48·가명)씨가 상담소로 들어오는 걸 보고 반사적으로 책상 아래로 몸을 숨길 만큼 두려움에 떨었다. 남편은 여전히 상담센터의 중재나 조언을 거부했고, 카린에겐 희망이 없었다.

술취한 남편의 폭력을 피해 며칠씩 필리핀 친구들 집으로 도망갔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카린이 독립을 결심한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즈음 카린은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카린에게 유산을 강요했다. 남편을 설득해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카린의 편이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더욱이 카린은 가톨릭 신자여서 결코 유산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시집을 떠난 카린은 상담센터의 소개로 전남 이주여성보호센터에서 생활하면서 뱃속의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카린은 10시간이 넘는 긴 산고를 견뎌내며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산모를 지킨 이는 가족이 아니라 영암행복한가정상담센터의 나명희 소장이었다.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상담센터와 카린의 친자확인 요청마저 거부하며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홀로 서겠다고 마음먹은 카린은 지난여름 시집 식구들한테서 두번째 상처를 입었다. 무슨 일인지 시집 식구들이 태도를 바꿔 그를 다시 찾았다. 시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려졌고, 그를 돌볼 사람이 필요해진 것이다. 카린은 고민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않기로 하고 이혼을 결심했다. 나 소장은 “카린이 아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남편의 마음만 확인되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왔다”며 “하지만 시집에서 카린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시어머니 병수발을 할 사람을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지난 17일 오후, 전남 목포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카린이 눈물로 지켜낸 아들 준수(가명)의 돌잔치가 열렸다.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교육지원을 하는 씨제이(CJ)도너스캠프가 카린의 사연을 듣고 돌잔치를 마련했다. 카린의 필리핀 친구들과 상담센터, 이주여성보호센터 직원 등 40여명이 준수의 첫 생일을 가족처럼 축하해줬다. 카린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아들을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나명희 소장은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여성들은 카린처럼 진정한 식구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남편뿐 아니라 시부모 등 모든 가족이 다문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사진 씨제이도너스캠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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