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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우리동네 돈’ 만들어 이웃정 담긴 거래

등록 2010-07-22 21:59

지난 4월 지역 품앗이 한밭레츠 회원 200여명이 대전 추동 동명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품앗이 만찬을 열고 있다. 이날 한밭레츠 회원인 서예가 김진근씨는 서예작품을 제공하고, 지역화폐인 ‘두루’를 벌었다.  한밭레츠 제공
지난 4월 지역 품앗이 한밭레츠 회원 200여명이 대전 추동 동명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품앗이 만찬을 열고 있다. 이날 한밭레츠 회원인 서예가 김진근씨는 서예작품을 제공하고, 지역화폐인 ‘두루’를 벌었다. 한밭레츠 제공
[나눔꽃 캠페인] ④ 지역화폐
마을·학교 등 공동체 안에서
자체 화폐 만들어 상품 교환
‘한밭레츠’ 성공뒤 30곳 확산
서로 나누는 인간관계 형성

대전에 살고 있는 최장희씨는 지난 13일 지역품앗이 ‘한밭레츠’ 누리집(tjlets.or.kr)의 ‘거래하고 싶어요’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마이다스님, 꽃사슴네와 저희 사무실에 방충망 2개 설치해주세요. 야근할 때 문을 열어 놓았더니 모기가 극성을 부리네요.” 아이디가 ‘마이다스’인 손근석씨는 다음날 오후 2시 최씨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최씨는 문과 두 개의 창문에 방충망을 설치한 대가로 현금 8만원과 5만두루를 냈다. 최씨는 같은날 명함 300장을 현금 1만4000원과 6000두루로 계산했으며, 펼침막 하나를 현금 2만1000원과 9000두루를 주고 구입했다.

최씨가 사용한 ‘두루’는 현대판 품앗이 운동을 벌이고 있는 대전의 한밭레츠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지역화폐다. 어떤 회원은 농산물을 팔아 번 두루로 동화책, 장난감 등 유아용품을 구입하고, 또다른 회원은 악기를 가르쳐주고 번 두루로 화장실 수리비를 결제한다.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와 다른 점은 일이나 재화에 대한 가치를 두루로 환산할 때, 거래 순간마다 회원들이 그때그때 판단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신세를 많이 진 사람에겐 가치를 더 쳐줄 수도 있고, 가난한 이들에게 두루를 받아야 할 때는 덜 받을 수도 있다.

2000년 처음 시작된 한밭레츠의 품앗이는 갈수록 종류가 다양해져 지금은 가장 성공한 지역화폐 사례로 꼽힌다. 집수리, 농사일, 외국어, 컴퓨터 등과 같은 전문기술 품앗이부터 아이 돌보기 등 생활품앗이, 중고서적이나 중고의류와 같은 나눔 품앗이도 있다. 한의원과 의원, 치과, 동물병원 등 의료 서비스도 모두 두루를 이용해 계산할 수 있다.

한밭레츠의 2010년 총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1년 동안 회원들 사이에서 1만4983건의 거래가 이뤄졌고, 거래금액은 2억4000만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두루 거래액은 1억2000여만원으로 전체 거래금액의 50.8%를 차지했다. 두루를 이용한 거래 품목은 농산물이 22.7%로 가장 많았고, 의료서비스가 13.6%로 뒤를 이었다.


한밭레츠 품앗이거래 증가 추이
한밭레츠 품앗이거래 증가 추이
한밭레츠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30여개의 지역화폐가 생겨나는 등 국내 ‘지역화폐 운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기존 화폐로 상징되는 소유와 축적 중심의 생활방식을 관계와 나눔 중심으로 바꾸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지역주민센터가 나서 지역화폐를 만들기도 하고,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가 지역화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경남 함양 녹색대학의 녹색화폐가 대표적인 예다. 국내 최초의 대안 대학으로 2003년 처음 문을 연 녹색대학은 ‘사랑’이라는 단위의 녹색화폐를 만들었다. 교수의 노동 1시간과 학생의 노동 1시간을 동일하게 5000사랑으로 거래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녹색대학은 등록금의 25%, 직원 급여의 75%를 사랑으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고, 학교 매점이나 서점, 음식점 등에서 사랑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녹색화폐를 쓸 곳이 많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됐다. 음식점 주인은 벌어들인 녹색화폐로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결국 화폐가치가 급락해 6개월 만에 녹색화폐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실패 원인은 좁은 공동체였다. 공동체가 너무 좁으면 지역화폐 통용에 필요한 유통구조를 만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성공적인 지역화폐 사업으로 꼽히는 한밭레츠는 공동체 안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밭레츠 박현숙 두루지기는 “최근 4~5년 동안 시작한 지역화폐운동 중 상당수는 여성가족부 등과 같이 ‘관’에서 지원을 받아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화폐는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에 먼저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음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밭레츠가 틈나는대로 저녁 모임을 열어 회원들끼리 자연스럽게 품앗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05년 출범해 성공한 품앗이로 평가받는 대구 달서구 본동종합사회복지관 ‘늘품’도 소모임을 통해 관계망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탁구, 서예 등 소모임 활동을 통해 회원 단합을 도모하고, 환금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화폐 사용 비율을 정해 놓았다. 늘품의 지역화폐는 ‘품’인데, 모든 거래를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본동 주공아파트 안에서 열리는 나눔장터와 회원 간 직거래를 통해 이뤄지도록 했다. 이 거래에서 50% 이상은 반드시 품을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성공한 품앗이 공동체들은 이제 동네별로 분화해 더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이도 함께 보고, 김장이나 경조사도 함께 치르는 것이다. 이들은 가장 작은 단위인 동네 공동체를 튼튼히 다진 뒤, 이 동네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가장 이상적인 품앗이 공동체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2부 끝>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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