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의식불명 상태인 아들을 대신해 나온 여상금(66·여)씨는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쏟았다. 불안한 눈빛의 김은남(39)씨는 회견이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쉰다섯살의 조성복씨는 억울함이 복받쳐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모두 중국에서 온 동포들이다.

14일 오전 서울 구로구 ‘외국인노동자·중국동포의 집’에서 이들은 한국에서의 인권유린 실태를 조목조목 고발했다. 회견에 참석한 100여명의 동포들은 사연이 발표될 때마다 눈가를 훔치며 제 일처럼 아파했다.

정근학씨, 한국인 동료직원한테 맞아 3개월째 의식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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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씨의 아들 정근학(34)씨는 지난 1월 일하던 소규모 설비회사의 한국인 직원한테 병으로 머리를 맞아 3개월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밀린 임금 200만원을 받으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여씨는 “한시라도 빨리 큰 병원에 데려갔으면 저 지경까진 안 됐을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해 직원과 이 회사 사장은 정씨가 다치자 근처 작은 병원에 데려가 외상만을 치료했다. 다음날 정씨가 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의식까지 잃자 그제야 정씨를 큰 병원으로 옮겼다. 여씨는 “담당 의사가 ‘조금만 빨랐으면 상태가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가족들한테 빨리 연락이라도 해줬으면 어떻게든 조처를 취했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가해 직원이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된 뒤 이 회사 사장은 연락이 끊겼다.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 김은남씨는 불법 체류자 신분 때문에 5년 동안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고 털어놨다. 경기 광주의 한 농장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중노동을 했지만 5년 동안 받은 돈은 100여만원에 불과했다. 김씨는 과로로 영양실조에 걸려 손톱까지 빠졌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라는 족쇄 때문에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도, 농장 주인을 고발할 수도 없었다.

경기 성남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조성복씨는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한국인 상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팔과 배를 삽으로 내리치더라고요. 인간을 어떻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씨는 상사를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회견을 이끌던 중국동포의집 부대표 이선희씨는 끝내 “한국인으로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울먹이며 사과했다. 김해성 대표는 “외국인 체류자 100만명, 중국동포 30만명 시대라지만 이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권유린은 더 극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영상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