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8일 일가족 4명과 함께 남한으로 온 이아무개(38)씨는 북에 남은 가족들의 안전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이북지역인 강원도 통천에서 고성군 통일전망대 인근까지 9시간 넘게 소형 목선을 타고 온 이씨는, 국방부·경찰 등의 합동조사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보안 유지를 요청했다. 그는 이것이 어렵다면 자신을 바다로 돌려보내거나 제3국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6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날 새벽, 이씨의 탈북 사실과 인적 사항 등이 언론이 공개됐다. 실명은 아니었지만 나이·직업·군복무시기·탈북경로·가족관계 등이 노출돼 사실상 신원이 알려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이를 안 이씨가 간접적으로 북한의 부모와 친척 22명의 안부를 확인했더니, 모두 행방불명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신원이 공개돼 북한의 가족들이 피해를 봤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경찰이 탈북자 처리 규정에 따른 비공개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고, 강원지방경찰청에 기관 경고, 홍보 담당자에게는 경고 조처하도록 경찰청에 권고하기로 25일 결정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육·해상 및 공중 경유 탈북자 처리 매뉴얼’은 탈북자 발생 때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공개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국가정보원에서 인적 사항을 가명으로 간략히 발표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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