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9시 일을 끝마치고 이화여대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 모인 한부모 가정의 여성들이 취업 문제와 자녀 교육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울증 떨치고 소외감 극복…자녀교육 도움도
“난 소중하니까” 자신감 심어요
남편과 사별해 홀로된 원아무개(40)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남편이 뇌종양 진단 뒤 3년 반 동안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 아들(14)·딸(11) 두 아이만 남은 뒤부터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정부로부터 생활비 10만1천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병이 난 뒤로는 일까지 관둬 아이들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 자체가 말이 아니다.
그러던 원씨는 이화여대 성산종합사회복지관의 ‘빈곤지역 여성 한부모 역량강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다들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이다 보니 만나면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싶고 고민을 나눌 수 있어 힘이 난다”고 말했다.
2004년 7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은정 가족복지 팀장은 “처음엔 ‘과부 모임’에 나간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며 한부모 모임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부모 모임이었다.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의 엄마들이 가장 고민하는 게 자녀 교육 문제거든요.” 우선 또래 자녀 공부방에 한부모 자녀 17명을 포함시켜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줬다. 또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열리는 모임에서 전문강사가 진행하는 자녀교육·부모교육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희숙(41)씨는 “아빠 구실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하기만 했고, 사춘기 딸아이가 반항할 때마다 무조건 맞싸웠는데 강좌를 듣고 난 뒤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땐 어땠나’를 생각하게 된다”며 “아이들 교육에 정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이들이 양육을 책임지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여성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김 팀장은 “한부모 가정의 여성들은 대개 혼자 남았다는 소외감과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나의 유용성 찾기’ 등의 집단 프로그램으로 이들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에 방점을 찍었다.
권혜영(41)씨는 “똑같은 엄마인데도 부녀회만 나가도 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 오면 사람 대접 받는 기분이에요”라며 “다른 곳에 나가서 힘든 일이 생길 때도 ‘나는 잘났다’ 모임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며 견딜 수 있답니다” 하고 말했다.
2004년 12가족으로 시작된 이 모임에는 현재 3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복지관에서 하는 정기모임으론 부족해 아예 자조모임까지 꾸렸다. 복지관에서 배운 인터넷 능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다음카페에 ‘기운쎈 천하장사’ 카페를 만들어 서로 소식을 전하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열고 있다. 이들은 풍물패·태권무 등의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글·사진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글·사진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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