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만리동 1가 만리동 공원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을 찾아 짐수레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 밖 ‘빈곤한 비수급자’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최후의 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생계·의료급여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하더라도 실제론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빈곤층이 6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망 밖에 놓인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우선 의료비 부담이 큰 중증장애인이 있는 가구에 한해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재산이 있는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인 부모·자녀 및 그 배우자)가 있다면 수급자가 될 수 없도록 한 제도로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제71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심의·의결을 거쳐 이런 내용이 담긴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4∼2026년)을 발표했다. 종합계획 마련을 위한 ‘2021~2023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 및 평가연구’를 보면, 2021년 기준 비수급 빈곤층은 66만명으로 집계됐다. 가구의 소득인정액(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의 합)이 기준 중위소득의 40% 이하로 생계급여 혹은 의료급여 지급 조건을 충족하지만 여러 조건 탓에 실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66만명에 달한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비수급 빈곤층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을 의료급여를 받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인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보고 있다. 교육·주거급여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으나 생계급여엔 이 기준이 일부 남아 있으며, 빈곤층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의료비 지원을 위한 의료급여엔 여전히 전면 적용되고 있다. 현재 의료급여를 받으려면,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40%(올해 1인 가구 83만1157원)보다 낮아야 할 뿐만 아니라 부양 능력이 있다고 판정받은 부양의무자가 없어야 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가 속한 가구에 대해선 소득·재산 기준을 충족하고 부양의무자 소득·재산이 일정 수준(연 소득 1억원 또는 재산 9억원)을 넘지 않는 한 의료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생계급여의 경우 2021년 10월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긴 했으나, 부모 또는 자녀 가구의 연 소득이 1억원을 넘거나 재산 9억원을 초과하면 생계급여를 주지 않는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그러나 서울에 집 한채만 갖고 있더라도 이 기준을 넘어서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돼왔다. 정부는 2026년까지 생계급여 지급 예외 규정을 손보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이날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생계급여 지급 대상을 내년부터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에서 32% 이하로 확대하는 데 이어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35% 이하까지 넓힐 계획이다. 주거급여 지급 기준도 내년 기준 중위소득의 48% 이하에서 50% 이하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5만여명, 생계·주거급여 지급 기준선 상향으로 각각 21만여명, 20만여명이 추가로 지원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복지 사각지대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하며, 더 나아가 완전 폐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부양의무자인) 가족과 관계가 단절됐는데도 그 가족의 소득·재산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한다”며 “주민센터에서 (생계급여 지급) 예외 규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 자체를 포기했다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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