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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단독] 농어촌 5년 근무 외국인 요양보호사 ‘영주권’ 추진

등록 2023-09-11 06:58수정 2023-09-11 18:02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고령화와 인구절벽에 맞닥뜨린 지역에서 일정 기간 요양보호사로 일한 이주노동자한테 영주권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요양보호사를 구하기 어려워 돌봄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젊은 돌봄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에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각국이 외국의 젊은 돌봄 인력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어 능력과 사회복지제도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춘 대학 졸업자부터 문호를 열어 이들이 국내 돌봄 현장에 원활히 적응하게끔 할 것”이라며, 최근 법무부에 ‘외국인 요양보호사 확보 방안’을 제안해 비자 문제 등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방안은 국내 대학 보건복지 관련 학과를 졸업한 외국인 중 구직 비자(D-10)를 보유한 이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올해 기준 89개 시·군·구)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면 근무 기간에 따라 장기 체류 자격을 주는 내용이다. 복지부는 3천여명의 외국인 학생이 보건복지 계열 학과에 재학 중인 것으로 파악한다.

인구감소지역에서 3년 이상 근무하면 이주노동자에게 최대 5년의 국내 체류 비자(F-2)를, 5년 이상 근무하면 영주권 비자(F-5) 신청 자격을 주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영주권 비자를 받으면 배우자나 미성년자인 자녀도 한국에 들어와 거주할 수 있게 된다. 가족결합권을 주겠단 것이다. 복지부는 법무부 검토를 거쳐 관련 지침 등을 개정하면, 이르면 올해 안에 이 제도를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가 영주권을 주는 방식의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에 나선 건 국내 요양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한데다 도시와는 달리 농어촌에서 요양 인력을 채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게 된 현실 때문이다. 20·30대 청년층이 ‘열악한 일자리’인 돌봄노동에 유입되지 않자, 국내 대학을 나온 외국인 청년들을 요양보호사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소 인력 부족에 올해 상반기 이주 노동자 8천명을 배치한 정부가 가사노동자 수입에 이어 요양보호사까지 돌봄 영역으로 이주 노동자 유입을 확대하는 흐름에 선 것으로 해석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장기요양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 장기요양기관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60대가 50.3%로 가장 많고 50대(30.8%), 70대 이상(12.0%)이 뒤를 이었다. 20·30대는 1.0%, 40대는 6.0%에 그쳤다. 그나마 수도권 등 대도시에 편중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1명당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 수는 전국 평균 0.55명인데, 서울(0.71명)·인천(0.67명)·경기(0.64명) 등 수도권과 제주(0.41명)·전남(0.43명)·강원(0.46명) 등 비수도권 간 차이가 크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의 신안군공립요양병원은 지난 7월 요양보호사 모집 공고를 냈는데, 3개월째 정원(10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주변 주민 중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부족한데다, 목포시 등 주변 대도시의 요양보호사들도 연륙교를 건너야 하는 먼 출퇴근길을 꺼린다. 이 병원 관계자는 한겨레에 “신안군 인구의 35% 정도가 65살 이상 고령자여서, 30∼40대 젊은 직원을 뽑는 것은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기초지자체 가운데 인력난이 심한 53곳엔 공립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예 1곳도 없다. 정부는 국비를 지원해 2027년까지 전국 모든 시·군·구에 1곳 이상의 공립 노인요양시설을 지을 계획이지만, 일부 지자체는 구인난을 이유로 설립을 꺼린다. 한 비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한겨레에 “공립 요양병원을 적자 없이 경영하려면 최소 150병상을 운영해야 하는데, 지역 내에서 그만큼의 요양보호사나 간호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확대해 농어촌을 중심으로 젊은 인력을 늘리면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 지역 인프라를 확충할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돌봄노동 전반의 근무 여건과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이런 조처가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인다. 정부가 지난해 말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등 장기요양기관 종사자 45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 중 66.1%가 비정규직이었고 정규직은 33.9%뿐이었다. 방문요양, 방문목욕 등 재가서비스 제공기관 종사자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4시간에 그쳤다. 상당수 요양기관이 인력 수요가 있을 때만 시간제로 사람을 써, 장기근속은 어렵다는 얘기다.

전용호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호봉제 등을 도입해 돌봄 인력이 오래 근무할 여건을 만드는 조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과정 없이 외국인 인력만 늘리면, 불안정한 일자리만 외국인들에게 넘기는 셈”이라고 짚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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