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와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 회의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용하, 김연명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 연합뉴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연금개혁특위)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등 ‘모수개혁’ 논의를 미루고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연금개혁이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국회가 민간자문위원회에 보험료율·소득대체율 같은 수치를 뺀 보고서 제출을 요청함에 따라, 민간자문위는 쟁점을 나열한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가 모수개혁 등 알맹이는 빼고 선택권은 넓힌 개혁안으로 공론화를 진행할 경우, 이견만 확인한 채 또다시 연금개혁은 표류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1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연금개혁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국회에 제출할 보고서 초안을 20일까지 취합해 이달 말 특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특위 여야 간사가 “자문위 보고서엔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 국민연금 제도 주요 변수와 관련해 수치를 넣지 말고 구조 개혁을 다뤄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민간자문위는 주제별로 다양한 의견을 나열한 보고서를 작성·제출하기로 했다. 애초 민간자문위는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의 방향성이 담긴 합의안을 연금개혁특위에 제출할 예정이었이었지만, 연금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보험료율 인상만 강조하면서 결국 ‘합의된 숫자’가 빠지게 됐다. 한 민간자문위원은 <한겨레>에 “(보고서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했던 얘기들을 그대로 올리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보고서에는 △연금 개혁 필요성과 방향 및 노후소득보장 전망 △국민연금 급여수준·보험료율 △국민연금 수급개시·의무가입 연령 △국민연금 사각지대 완화(가입기간을 추가 인정해주는 ‘크레디트’·보험료 지원) 방안 △국민연금·기초연금 관계 △특수직역연금 개혁 △퇴직연금 노후소득보장 기능 강화 △연금 개혁 협의 방안 등 8개의 주제가 담길 예정이다.
보고서를 받은 연금개혁특위는 3월부터 국민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간다. 먼저 국민연금 이해당사자 대표를 선정해 의견을 듣고,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 이런 의견 수렴 절차에는 최소 26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논의 범위가 넓어지고 구체적인 선택지가 사라지면서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여부와 대학입시제도 개편 방향 논의를 위한 공론화도 결론 도출에 3~4개월이 걸렸다. 이미 한달 가량 일정이 늦어진 상황에서 10월까지 정부에 개혁안을 제출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치적으로 부담되더라도 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손익을 명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수치”라며 “현세대와 미래세대간 부담 비중을 보여주는 모수 개혁을 빼고 연금 개혁 동력이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모수 개혁 논의에서 한 발 물러서면서, 10월까지 연금제도 개선 방안이 담긴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내야 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부담은 커졌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 연금개혁 실패의 원인으로 ‘4개 복수안 제출’을 꼽아온 터라 단일안 마련에 대한 압박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불명확한 게 많아 단일안을 낼지 복수안을 낼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경우 자칫 ‘국민연금은 필요 없다’는 공적연금 무용론으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금 같은 상황은 사람들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오래 내는데 기금은 소진될 수밖에 없다는 인상만 준다”며 “국회가 중장기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10월까지 정부가 그 방향성 안에서 모수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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