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2월 서울 강북구청 근처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국민연금 개혁’이 다시 사회적 화두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과연 연금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이슈는 대체로 세 가지로 모인다. ‘저부담·고급여’ 구조에 따른 재정불안, 낮은 보장성으로 인한 적은 연금, 국민연금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연금 사각지대다. 여기에 더해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슈가 있다. 바로 ‘연금 격차’ 문제다. 연금 격차라고 하면 흔히 공무원연금 같은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 간 형평성을 연상하지만, 공적연금 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격차 문제 또한 해결이 시급하다. 소득수준과 성별에 따라 커지는 연금 혜택의 불평등은 노후 생활의 질을 현저히 갈라놓기 때문이다.
6일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팀이 최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최종보고서 ‘행정데이터를 활용한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심층 분석’ 연구를 보면, 소득이 낮아 연금이 더 절실한 하위 20% 그룹의 국민연금 가입률(18~59살 경제활동인구 대비 직장·지역 가입자 비율)이 소득 상위 20%의 가입률에 견줘 17%포인트가량 낮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구 교수팀은 2019년 10월 시점으로, 340만2053명(약 150만 세대)의 개인정보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한 뒤 소득 정보 등을 결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의 연금 가입 및 수급 실태를 밝혀냈다. 이번 분석에는 특히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국세청 과세(소득), 사회보장위원회의 자료 등 12개 공공기관 데이터와 6대 시중은행 보유 정보를 한데 묶어 활용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복지패널은 많아야 1만~2만여명 안팎을 대상으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서베이 자료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규모 행정데이터 활용은 전례가 없다. 그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노동자 간 국민연금 가입률 등 차이를 보여주는 분석은 많았지만, 대규모 행정데이터에 기초해 소득수준별 연금 격차를 실증적으로 확인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 결과를 자세히 보면, 국민연금 의무가입자(18~59살) 가운데 소득 하위 20%( 1분위) 저소득층은 절반가량(51.69%)만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다 . 하지만 상위 20%인 고소득층(5분위)은 열에 일곱 가까이(68.27%)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국민연금은 노후 생활을 지탱하게 하는 현금 소득으로 대표적인 공적 노인복지제도다. 노후에 다달이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일단 가입자여야 하고, 10년 이상(최소가입기간 120개월)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최소가입기간 120개월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인 1분위의 평균 가입 기간은 81.18개월이었다. 반면 고소득층인 5분위 평균 가입 기간은 151.79개월이었다. 최소가입기간에 미치지 못하면, 노후에 다달이 받을 수 있는 연금 대신, 자신이 낸 보험료에 이자를 더한 반환 일시금만 받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소득 수준별로 최소가입기간을 얼마나 채웠는지를 본 ‘노령연금(국민연금 지급 방식) 최소가입기간 충족 비율’ 분석에서도 똑같이 확인됐다. 저소득층인 1분위의 최소가입기간 충족 비율은 35.67%에 그쳤지만 고소득층인 5분위는 이 비율이 76.12%에 이르렀다. 저소득층 가입자는 10명 가운데 3.5명만 노후에 연금을 받는데, 고소득층은 10명 중 7.6명이 연금을 받는다는 뜻이다. 구인회 교수는 “(연금 개혁 과정에서) 현행 59살로 제한된 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을 연금수급 개시 연령 전까지 늘리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문제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구인회 교수는 “(연금 개혁과정에서) 현행 59살로 제한된 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을 연금수급 개시 연령(2022년 현재 63살) 전까지 늘리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가입률과 가입 기간에 나타난 격차는 노후에 연금을 받는 비율인 수급률과 수급액으로 고스란히 반영돼, 1분위 국민연금의 수급률(65살 이상 전체 노인 가운데 국민연금 수급자 수)은 37.91%에 그쳤다. 2분위 수급률은 46.05%, 3분위 48.06%, 4분위 46.93%, 5분위는 44.63%로 나타났다. 연금 수급액을 보면, 1분위 수급자는 연평균 354만원을 받는 데 견줘, 5분위는 연 543만원을 받는다.
연금 격차는 18~59살 남녀 간 성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남성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71.34%지만 여성의 가입률은 60.69%에 그쳐 11%포인트가량 벌어졌다. 또 여성의 평균 가입기간은 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가입기간에 미치지 못하는 96.67개월이었으나, 남성은 평균 136.41개월로 집계됐다. 노인층 진입을 앞둔 55~59살 그룹을 보면, 남성 가입자 77.32%는 최소가입기간을 채웠으나 여성 가입자는 39.13%만 최소가입기간을 충족했다.
구인회 교수는 “연금 격차는 보험료 미납이 누적돼 연금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하거나 수급 자격이 있다 하더라도 수급액이 낮아 발생하는 ‘연금 사각지대’의 결과”라며 “이번 연구 결과는 특히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모자라는 여성과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해 조세를 통한 보험료 지원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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