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가톨릭평화방송> 제공
‘2대8 가르마, 넥타이에 양복까지 빼입은 차분한 표정의… 인권운동가.’
정장 차림 인권운동가라니, 언뜻 생각하면 형용모순이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 아스팔트 바닥에서부터 경찰서와 검찰청, 교정시설 등을 부지런히 오가던 그는 지난달 갑자기 자신의 페이스북 대문에 이런 ‘근엄한 사진’을 올렸다.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출마용?”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변신을 위한 준비이긴 했는데 정치 쪽은 아니었다. 라디오방송 진행자로 데뷔하면서 방송국 홈페이지에 걸 사진을 촬영했다나. 지난달 18일부터 <가톨릭평화방송>(cpbc) 시사프로그램 <오창익의 뉴스공감>을 맡아 진행하게 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이야기다. 인권운동가가 매일 한 시간씩(월~금 오후 5~6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된 이유는 뭘까. 마침 올해로 인권운동 30년째라는 그를 지난 19일 만나 앵커가 된 소감과 포부, 윤석열 정부에서 인권운동가로서 고민 등을 들었다.
“원래 이 프로그램 고정 출연자였다. 혹시 진행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길래 농반진반으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진행하겠다’고 답했다가 덜컥 진행을 맡게 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동안 신문 칼럼 연재나 각종 인터뷰를 일상적으로 해왔으니. 1990년대 후반부터 방송에도 꾸준히 출연해왔고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는 6년 동안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했는데 방송진행을 통해서도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도 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덕담에 오 국장은 “인권운동을 하면서 어디서든 말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를 상대로 한 발언이란 점에서 시사프로그램 진행과 인권운동이 멀리 있지 않다지만,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얘기하면 끝(?)인 일반 출연자와 프로그램 전체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진행자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을 터, 초보 앵커로서 적응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4월18일 첫 방송을 했으니 한 달 조금 더 지났는데, 역시나 어렵더라. (웃음) 출연자에게서 무언가 끌어낸다는 게 쉽지 않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이 많다. 청취자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게 앵커의 실력인데,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동안 말하는 훈련을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웃음)”
‘변신’ 과정에는 인권활동가로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온 지인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정범구 청년재단 이사장과 김종배 시사평론가, 김종대 전 의원 등 인권연대 회원 겸 ‘앵커 선배’들은 “절대 출연자와 싸우면 안 된다”고 조언해줬단다.
“일반 출연자 시절에는 하고 싶은 얘기 마음껏 하고, 상대와 논쟁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앵커는 다르다. 출연자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논쟁할 수 없다. 일종의 심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연자와 싸우지 말라’는 당부는 잘 따르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다.(웃음)”
인상 깊었던 출연자를 묻는 말에 그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김종대 전 의원에게서 많이 배웠다. 요점 정리가 뛰어난 데다, 공동체를 걱정하는 마음이 각별하게 느껴졌다”고 한 뒤 말을 이었다. “첫 방송 날 개인적으로 ‘최애’하는 가수 정태춘을 모셨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을 청취자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첫날이라 너무 헤맸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였고 최근까지 서강대 이사장을 지낸 박문수(본명 프란시스 부크마이머) 신부와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1969년 한국에 와서 53년 동안 살고 있는데, 한국이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웃과 가족처럼 지냈는데, 지금은 온통 경쟁에만 파묻혀 있다는 거다. 서강대 구내 사제관 대신 독립문 부근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는데, 인터뷰 마무리하면서 인사말을 건넸더니 ‘현장에서 자주 봬요’라고 하더군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인사였다.”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오창익의 뉴스공감’ 4월부터 진행
“인권운동가와 시사프로 진행자
거리 멀지 않다는 생각에 맡아
정부 인사 보니 방송거리 넘칠듯”
올해 산재감시단 운영·연구소 설립
방송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정체성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인권운동가이다. 1992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일하기 시작해 1999년 시민단체인 인권연대를 만들었고 20년 넘게 사무국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인권연대는 회원 3천여명 회비로 운영해오며 외부에서 어떤 재정적 도움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인권·권력기관 감시운동에서 시작해 2015년엔 벌금 낼 돈이 없어 감옥에 갈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벌금액을 대출해주는 장발장은행을 개설해 지금껏 1081명에게 18억8천여만원을 대출해주는(그 재원도 시민 1만여명 후원금이었다)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왔다.
“올해는 산업재해감시단을 운영하고 인권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아직 산업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30년 교통사고 사망자가 크게 줄어든 것처럼, 함께 노력하면 산재 사망도 줄일 수 있다. 산재감시단원 모집에 회원 50명가량이 지원했다. 이분들과 전국 산재 현장을 다니며 산재 감시, 산재예방 캠페인 등을 할 것이다. 오래 준비해온 인권연구소는 실용적인 인권연구 활동을 구상하고 있다.”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물러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인권운동가로서 현 시국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문 정부는 아쉬운 게 많았고, 윤 정부는 걱정할 게 많다. <…뉴스공감>에 ‘오창익의 창’이라는 앵커 칼럼이 있는데, 최근 윤석열 정권이 한꺼번에 워낙 많은 것을 보여줘 소재가 넘쳤다. 이 정권 인사를 보면 앞으로도 소재가 부족할 날은 없을 것 같다. 앵커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시민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인권연대는 창립 이래 줄곧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해왔는데, 앞으로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일도 챙겨보려고 한다. 산재감시단도 그런 차원이다.”
30년 전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 인권운동을 시작해 지금에 이른 만큼, 일희일비할 것 없이 꾸준히 새로운 일을 개척하며, 버티며 살아가면 된다는 뜻이리라.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평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오창익의 뉴스공감>을 들어달라. 유튜브를 통해 만날 수도 있다. 사람 중심의 따뜻한 방송, 평화를 지향하는 방송을 만들고 있다. 많은 분과 함께하고 싶다. 인권연대도 자체 유튜브를 만들고 있으니 구독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