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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휴심정

힉교 ‘일진’ 성호, 반장이 되더니…

등록 2012-11-17 12:12수정 2012-11-17 15:09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글 김인숙 수녀

광주에서 깡패로 알려진 두 녀석이 정식 절차를 밟고 살레시오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한 명은 김성식, 또 한 명의 이름은 신성호였다. 둘은 주먹으로 광주시 중학교를 평정하고 있었다. 폭력배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서로 자기파로 영입하기 위해 접촉을 서두르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부모들은 자식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닿았을 때, 살레시오 고등학교에 보내면 사람을 만들어 준다더라는 입소문을 믿고 자기 아들을 적극 밀어 입학을 시킨다. 이 때문에 학교는 학년 초에 성호, 성식이 같은 몇 명의 아이들로 초긴장을 한다.

강재원 수사는 자신의 모교인 이 학교에서 종교교사 겸 생활담당을 맡고 있었다. 그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이런 학생들을 방치해 버리면 교실 붕괴는 물론이요, 학교 전체가 쑥밭이 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성호, 성식이처럼 강력한 주먹을 사용하여 싸움 잘 하는 녀석들은 학교 내에서 우상이 되고 아이들은 금방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두 주먹파들은 교실 밖으로 나가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살레시오고등학교
살레시오고등학교

고등학교 입학 전 성호, 성식이는 친구들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느그들, 학교 무사히 졸업하고 싶으면 그 강수사를 조심해라이. 요주의인물이여야.”

학교에서 강수사는 공부 대신 주먹으로 한 등급 올리고자 하는 녀석들에게 가장 재수 없는 인물이었다. 강수사가 떴다하면 피하는 것이 상수지 뭉쳐 봐야 되는 일이 없었다.

새 학기 초.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전교생들은 항상 체육관에 모여 운동을 한다. 그런데 이때가 왕따, 폭력, 흡연 등의 문제가 가장 많이 생긴다. 왜냐하면 담임은 퇴근하여 없고 한 학년에 한 명의 자율학습 담당자만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늘 교사의 현존이 취약한 시간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성호와 성식이는 이제 갓 1학년임에도 양 어깨를 잔뜩 귀 가까이까지 끌어 올려 먹이 포섭 직전의 독수리 날개를 하고선 고3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니까 앞으로 조심하셔이.”

하며 자신들의 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참을 깡패 폼으로 체육관 주변을 돌더니만 둘은 농구시합 중인 대선배 3학년들 사이를 휘젓고 들어가 훼방을 쳤다. 먼저 성호가 날아온 공을 가로챘다.

“야, 받아.”

“야호, 알았당께.”

“고3 실력 뭐 별거 아니네.”

하며 선배들을 빈정대기까지 했다. 그날 밤 학교 깊숙한 곳에서는 흥분한 선배 대 성호, 성식의 주먹 싸움이 벌어졌다. 결과는 1학년에게 3학년이 피터지게 맞아 쓰러진 것이다. 후배한테 일격 KO패를 당했다는 사실은 전체 고3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 즉시 고1 교실로 향했다. 거대한 집단폭력이 일어나기 불과 몇 분 전이다. 강수사에게 제보가 들어왔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수, 수, 수사님 큰일이…… 후배가 선배를 때렸고 지금 막 학교에서…….”

달려 온 학생이 알려주기 전까지 학교 측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강수사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총알같이 달려 갔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후배가 선배를 때린 놈들이 어디 있냐. 학교를 어떻게 알고 그러는 것이여? 선배들은 잘 들어라이. 이 일은 우리가 해결 할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라이. 느그들이 앞에 안 나서도 된다는 말이여. 알았냐?”

하면서 일부러 고3편을 들어주면서 그들의 치솟는 감정을 달랬다. 그날 하루 종일 강수사는 고1과 고3 교실을 수시로 순찰하며 교사 존재의 무게로 또 다시 고도될 분위기의 맥을 끊어 놓았다.

성호와 성식이는 선배들이 자기들을 향해 거세게 뭉치고 있다는 냄새를 맡고선 깨끗이 잘못을 인정했다. 학생 주임이 혼쭐을 냈을 때도 군말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날 이후, 강수사의 블랙리스트에는 성호, 성식이 이름이 추가로 올랐으며 그때부터 이 두 명과 강수사의 주먹 없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수사는 학생들의 수업 외 쉬는 시간, 점심시간, 자습시간이면 아이들 안에 있으면서 블랙리스트 명단 학생들을 특히 살폈다. 성호, 성식이가 자습을 하다 도서관 창문을 넘어 도망가는 찰나에 강수사의 손에 뒷덜미를 잡혔다. 점심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려고 해도 또 강수사가 보였다. ‘아, 울고 싶다. 펀치 한 번 날려봐?’ 하는데 강수사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저 인간은 사람새끼도 아니다. 저 인간만 없으면 학교를 다니겠는데…….”

둘은 이렇게 강수사를 욕하며 돌아 다녔다.

도저히 학교 안에서는 세력을 펴지 못한 성호와 성식이는 학교 밖으로 원정폭력을 나갔다. 출타하여 강수사 때문에 그동안 사용 중지가 되었던 주먹을 타 학교 학생들을 향해 마음껏 날렸다. 결국 이 사건으로 성식이는 서울로 전학을 가야했으며 성호는 자신의 오른팔격인 친구를 잃게 된 것이다. 실제로도 성호는 왼쪽 펀치가 세고 성식이는 오른손 펀치가 셌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며칠 뒤 갑자기 성호 엄마가 학교를 찾아왔다. 모전자전이란 말도 있듯이 엄마도 아들 성호와 똑같이 사방팔방에 대고 강수사를 문제 삼았다. 강수사만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다. 그 인간은 학생들 마음을 몰라준다. 자기 뜻대로 아이들을 다룬다며 아들 편에 서서 꿈쩍하지 않았다. 교직 근무 15년 동안 강수사는 학교 뒤에 있는 산책로 한번을 맘 놓고 거닐지 못했다. 고군분투하며 좌충우돌의 아이들 속에 육체적 현존으로 늘 있다 보니 그럴 틈이 없었다. 그가 아이들 안에 머무는 이유는 오직 학생들이 그 순간 죄를 최대한 짓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여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성호엄마는 강수사와 담임 사이를 갈라 놓았다. 담임마저 처음에는 엄마 쪽으로 기울였다. 자녀말만 믿고 학부모가 교사를 힐책할 때 많은 경우 교사는 그 학생에게 교육적 간접을 포기하려는 유혹이 든다. 강수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혹과 심한 고립의 아픔을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

엄마조차 강수사한테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성호는 두 주먹을 쥐고 양손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신이 믿을 것은 두 주먹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자기 주먹이 그렇게 초라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성호는 잠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2학년 2학기가 될 때까지 난 학교에 등교하여 도대체 뭘 했는가. 성호는 볼품없는 주먹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서히 보통 학생 반열로 들어오고 있었다. 참으로 지독한 긴 싸움이었다.

강수사는 운동시간이면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남학생들은 운동을 같이 할 때 마음을 연다. 거기에 아이스크림 두 번만 쏘면 마음을 더 활짝 연다. 교사와 함께 운동하는 그 순간에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를 진심으로 느낀다. 어느 날은 수업시간에 특별 이벤트를 열어 축구시합을 했다. 조건은 전체가 다 참석하는 것이었다. 시합이 끝나고 그가 아이스크림을 쐈다. 강수사는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흘러들었다.

“야야, 강수사 저놈, 맨날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릴 못살게 굴어도 저 놈처럼 해 준 선생이 누가 있냐?”

종교교사인 그는 자신의 과목을 재미있게 하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도록 철저히 준비했다. 교사가 열정을 가지고 자기 과목에 일인자가 될 때, 아이들은 그 교사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학생들의 심리를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여간 강수사 저놈은 징그럽게 재미있게 가르친다.”

는 것을 인정한 학생들은 그가 수업 중에 요구하는, 아이 컨- 내 눈을 봐라. 싸이런스- 침묵을 지켜라. 곤샌트래아- 집중하라는 약속을 지키며 순한 양이 되어 수업을 들었다. 만약 약속을 소홀히 할 때는 수업 도중에 단체 청소를 시켰다. 이것도 수업의 연장이라 그는 믿었다.

이제 성호는 3학년이 되었다. 성호의 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에 정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담임이었던 한문노 교사는 성호를 학급 반장으로 임명하는 큰일을 벌렸다. 중책을 맡게 하여 또래 안에서 가지고 있는 성호의 힘을 역이용할 방침이었다. 반장이란 임명장을 날벼락 맞듯 받은 성호는 ‘이제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인생. 그동안 잘못도 많이 했으니 남은 1년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심정 이었다. 반장 성호는 지금까지의 성호가 아니었다. 완전히 변하여 급우를 도와주고 봉사는 물론이요 담임의 부탁은 하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성호야.”

“네, 선생님!”

“고3들이 학교 안에서 담배피고 난리다. 네가 알아서 해라이.”

담임의 부탁이 떨어지면 성호는 급우들에게 가서

“오늘부터 변소에서 담배 피다 걸린 사람 있으면 알아서 해라이.”

성호의 이 한 마디로 아이들은 다음날부터 담배를 물고 학교 교문 밖으로 나갔다.

강수사 또한 반장인 성호의 힘을 사용하였다. 또래는 같은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에 언어, 대화, 이해, 받아들임이 훨씬 빠르고 쉽다.

“성호야, 2학년 재석이란 놈이 지금 보름동안 학교에 얼굴을 안 비친다. 니가 데리고 와라이.”

“네, 수사님. 염려마십시오.”

성호는 재석이가 없으면 복제인간이라도 만들어 올 각오다. 다음 날 아침, 성호는 강수사 앞에 재석이를 대령했다. 주위의 교사들은 성호가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놀라울 뿐이었다. 성호는 지역의 문제아에서 이제는 학교의 자랑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사진 <한겨레> 자료

성호는 반장의 역할과 과거의 폭력으로 지켜야 했던 보호관찰기간도 성실히 마쳤으며 4년제 대학교에 합격까지 하였다. 개망나니 아들이 사람이 되어 가문의 영광에 가문의 자랑인, 반장 완장을 차더니만 이번에는 대학까지 처얼썩 붙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낡은 트럭을 몰고 시골길을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양계장을 운영하던 성호 아버지는 학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트럭 뒤에 가득 싣고 온 닭똥을 나무에 거름으로 쓰라며 운동장에 쏟아 놓았다.

고교를 졸업한 성호는 그 뒤 ROTC(학군단)에 입단하여 훌륭한 군 생활을 마치고 학업을 수료한 후 자신의 고향 농촌진흥소에서 사회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그리고 어엿한 가장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

졸업식 날, 성호는 3년 동안 강적 스승이었던 강수사의 두 손목을 잡고 허리 굽혀 절을 하며 말했다.

“수사님, 후배들, 잘 부탁합니다.”

성호는 학교를 졸업하며 선배들이 전통처럼 남긴 이 말을 녀석도 남기고 갔다.

돈보스코 예방교육 영성

청소년 안에서의 교육자의 ‘현존(Assistente)’는 돈보스코 예방교육의 핵심이며 중심 요소입니다. 진정한 동반은 청소년들과 공간적으로 함께 하는 육체적 현존 뿐 아니라 애정과 호감을 다하여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입니다.

예방교육은 교실만이 아니라 운동장, 도서관, 자습실 등 청소년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가리지 않고 교육장소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이나 복도에서 사소한 교육자의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어 얼마나 많은 교육적 효과를 얻는지 모릅니다. 청소년이 있는 곳에 열린 마음으로 현존하는 교육자들이 있는 한 우리의 학교 교육은 죽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에 몇 번이나 학생들 곁에 다가가고 있습니까?

학생들 이름을 얼마나 불고 주고 있습니까?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려고 얼마나 노력하며 사랑하고 있습니까?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 교육자의 현존의 회수와 희생의 양에 따라 우리가 희망하는 전인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런 교육자를 이 시대 청소년들은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예방교육은 ‘사랑의 교육학’입니다. 강수사는 지난날의 교직생활을 되돌아볼 때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어느 순간 학생들을 체벌한 일이라고 고백 했습니다.

“청소년의 마음은 감동을 줄 때 열립니다. 그러나 체벌은 어떤 이유에서든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차라리 학생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도 체벌은 안 하는 것이 낫다. 체벌은 교사마저 외롭게 만든다는 말을 그는 덧붙입니다.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교육자들에게 거듭 당부합니다.

“교육자 여러분, 청소년들의 그릇된 행동을 고쳐주려거든 절대로 감정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이성적이어야만 합니다. 특히 교육자 여러분이 분노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분노한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 할지라도 청소년들은 교육자의 화난 표정이나 떨리는 목소리를 보고 그들은 마음을 닫아버리게 됩니다.”

강재원(사비오)수사님은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 행사를 맞아 자신의 모교에서 주는 “자랑스러운 살레시오고 21회 동기상”을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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