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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휴심정

승범이의 사랑고백 '빠라빠라빠라밤'

등록 2012-10-24 16:13수정 2012-10-24 16:14

기마전을 하는 아이들
기마전을 하는 아이들
승범아, 천국에서도 빠라빠라빠라밤 울려줘

밤새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땅에는 나뭇잎들이 어제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벌써 시들어 말아버린 잎, 붉게 물들어 매혹적인 잎들 사이에는 미처 단풍이 들기 전 그만 가지에서 떨어진 여린 잎도 있다. 최남식(베드로)수사는 파란 색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낙엽 한 장을 줍는다.

사람들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리운 사람이 이 땅에 살아 있으나 그를 만나기 어려워 보고파해야 한다. 그리운 이가 살아 있어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났어도 우리의 그리움과 보고픔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다. 최수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초록빛 낙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승범아, 천국에서도 “빠라빠라빠라밤” 클랙슨 울려봐, 자주는 말고 가끔씩 말이야.’

이목구비가 수려하여 연예인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종종 받았던 승범이 녀석.

‘승범아, 천국에서도 연예인 되는 거 거절할거야?’

‘네, 수사님.’

녀석이 기분 좋아 하면서도 싫다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손에 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씁쓸히 웃는다.

2008년 12월 27일. 최수사는 승범이를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16살 승범이는 서울 가정법원에서 재판(6호처분)을 받고 온 것이다. 녀석은 축구를 아주 잘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최수사에게 축구를 하자고 졸랐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수사님. 나가서 축구해요. 빨리요.”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라!”

“아니 수사님 빨리요. 제가 애들 모을게요.”

“그래, 방송해서 알릴게!”

최수사는 급히 마이크를 잡았다.

“사감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축구하기를 원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지금 곧장 1층 현관에 모여 주세요! 늦으면 못 나갑니다.”

환한 미소를 띠고 달려오는 승범이와 친구들. 그때 축구시합은 승리보다 서로 재미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수사님. 패스요, 패스.”

승범이의 오른발이 멋지게 올라가는 동시에 슛, 골이 상대팀 그물망을 흔들었다. 골을 넣고 나면 승범이는 어김없이 최수사에게 달려와 가슴에 폴싹 안기는 세레모니를 했다.

“수사님, 보셨죠? 이정도 쯤이야.”

그는 가끔 아이들과 일명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외출도 했다. 거리를 안마당처럼 활개 치며 살았던 아이들이 센터에서 너무 답답함을 느낄 때, 숨통을 틀 수 있도록 말 그대로 주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 것이다. 이때 아이스크림 한 개씩만 입에 물려주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승범이는 이 외출을 너무나 좋아했다. 영등포구 센터 주변이 바로 자기 집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오른쪽이 승범이
오른쪽이 승범이

“수사님, 저쪽으로 가면 저의 집이 나오고요. 저쪽은 제가 놀던 곳이에요.”

“저기 24시간 PC방 보이죠? 새롬 노래방도 보이죠? 거기도 제가 잘 다녔어요.”

“저쪽은 제 친구 집이에요.”

승범이 이야기를 아이들도 흥미 있게 들었다.

“그럼 승범이는 집에 가고 싶겠네?”

“그야 그렇지만 여기 생활도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매일 할 수 있으니까요”

“공부 안 해서 좋은 것 아니고?”

“그것도 그렇지만 그냥 좋아요. 많은 분들이 잘해 주시잖아요.”

“그럼 다행이네.”

“제가 나가면 꼭 다시 찾아올게요.”

“근데, 승범아. 다시 들어오지 말고, 꼭 놀러와야 한다.”

“히히, 알았어요. 수사님!”

주말 면회 때가 되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승범이를 만나러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최수사는 할머니를 통해 승범이의 가정사를 들었다. 승범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가정은 부유했다. 아버지는 외아들로 젊어서부터 열심히 일한 결과 자수성가해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범이가 첫돌이 지나기 전, 아버지는 공장 사람들과 여름 물놀이를 갔다가 그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엄마는 재가하였고 승범이는 누나와 함께 조부모 손에 맡겨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승범이를 정성을 다해서 키웠다. 그러나 사춘기가 된 승범이는 학업을 중단하고 또래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살았다.

승범이는 엄마와 살고 싶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우리 엄마, 안양에 있는 숯불갈비 집에서 일하세요. 주말에도 일하시기 때문에 면회 올 수가 없데요. 수사님, 우리 엄마 보러 안양 가요. 제가 숯불갈비 사드릴 게요.”

잘 생긴 승범이
잘 생긴 승범이

“그래, 언제 한번 같이 가자.”

어느 날 승범이 할머니께서 옷을 한 벌 가지고 오셨다. 노랑색 후드 티였다. 승범이는 성당에 갈 때나 중요한 날이면 꼭 그 옷을 입었다.

“승범아! 그 옷 이쁘다? 할머니가 사주셨구나!”

“아니요. 엄마가 사줬어요.”

“그래?”

“그 옷이 그렇게 좋아?”

“네! 엄마가 사 줬잖아요.”

활발한 성격을 가졌으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승범이 얼굴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우수랄까. 그늘 같은 게 서려 있었다. 엄마에게 가자고 어리광을 부리던 승범이……. 왜 그때 시간을 내어 안양 숯불갈비 집을 가지 못했을까. 그것이 최수사가 가장 후회스런 일이 될 줄이야.

센터에 살면서 돈보스코 성인을 좋아한 승범이는 ‘보스코’ 세례명으로 세례 받길 원했다. 그러나 퇴소 날짜가 세례식보다 먼저 다가왔다.

“승범아. 내일이면 여길 떠나는데 세례를 어떻게 할래?”

“약속했잖아요, 꼭 올게요!”

그동안 많은 친구들이 온다고 약속하고선 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승범이도 믿을 수는 없었으나 또 한 번 속아 보기로 하였다. 세례식을 앞두고 세례자들의 1박 2일 마음준비 모임이 있었다. 최수사는 승범이에게 전화를 했다.

“승범아, 내일 모임에 올 거지?”

“네! 몇 시까지 가면 돼요?”

“오전 10시 출발이야!”

“네! 수사님, 내일 봬요!”

다음날, 시계 바늘이 10시를 가리키는데 승범이는 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역시 오지 않는 게 정상인거야.’하고 있는데 어떤 녀석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차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수사님, 수사님, 저 왔어요.”

정말로 승범이가 온 것이다.

세례를 받은 승범이는 그 후에도 자주 센터를 찾아왔다. 다시 입소하여 공부하고 싶으나 조금 더 놀고 들어오겠다며 오토바이를 타고 날듯이 달려가곤 했다. 그날도 승범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승범아 왔냐? 어떻게 지내냐?”

“잘 지내요!”

“그래도 오토바이는 조심해야지!”

“염려마세요. 저 오토바이 잘 타요.”

“그래도 조심해라!”

“수사님! 어젯밤에 제 소리 들으셨어요?”

“무슨 소리?”

“어제 11시쯤 제가 이 앞을 지나갈 때 클랙슨 빠라빠라빠라밤 울렸잖아요?”

“그래? 그 소리가 너였어?”

“네, 제가 이 앞을 지나갈 때마다 할 게요. 그럼 그게 저인지 아세요.”

그 후 승범이는 센터 근처를 지나갈 때면 항상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최수사는 이 클랙슨이 울리면 승범이가 앞에 왔구나 생각했다. ‘빠라빠라빠라밤’ 소리는 최수사를 향한 승범이의 사랑고백이었다.

그리곤 1년이 지났다. 최수사는 다른 곳으로 갔다가 다시 센터로 돌아왔다. 그해 8월 31일 저녁. 승범이 할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최수사는 승범이 소식을 관장 수사를 통해 들었다.

“최수사, 승범이 학생 기억나나? 성격 좋고, 잘 생긴 녀석 말이야.”

그가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는 승범이었다.

“그 친구가 지금 병원에 있는데…….”

병명은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뇌수막염이었다. 할머니는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던 승범이가 마지막 의식이 있었을 때 “할머니, 내가 살레시오에 살 때 세례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혹시 죽게 된다면 거기서 장례식을 하게 해 주세요." 라고 했다는 손자의 말을 전했다. 그것이 승범이의 유언이 되었다.

승범이의 장례미사
승범이의 장례미사

며칠을 못 넘길 것 같다는 병원 측 예상보다 더 일찍, 하루를 채 못 넘기고 승범이는 세상을 떠났다. 센터 아이들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문을 다녀왔다. 승범이의 바람대로 장례식이 대림동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봉헌되었다. 승범이가 누워 있는 관이 흰 커버에 덮여 성당 안으로 운구하여 들어 올 때 최수사의 두 눈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검은 띠를 두른 액자 속의 승범이는 평온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의 외로움,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했던 그리움의 아픔이 이제 다 끝났다는 듯이…….

장례미사 때 최수사는 승범이에게 주려고 썼던 편지를 마지막 고별사로 읽어야 했다.

“사랑하는 승범아, 잘 가라. 그리고 미안하다.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한 것…… 용서해줘. 승범아, 나 너에게 굳게 약속하마. 너에게 못 다한 사랑,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너와 같은 아이들에게 몽땅 바칠 게. 천국에서 날 지켜봐 줘. 응, 승범아…… 널 절대 잊지 않으마.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승범아 잘 가라.”

불과 1년이란 짧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최수사에게 10년, 20년 아니 평생을 이어가는 사랑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최수사는 손에 든 낙엽 한 장에 입을 맞춘다. 그리곤 파란색이 너무도 선명한 나뭇잎을 가볍게 하늘 가까이로 날려 보낸다. 어디선가 승범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사님, 울지 마시고 오늘 밤 기대하세요. 아시죠? 빠라빠라빠라밤.”

기도하는 아이들
기도하는 아이들

돈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친절한 사랑이 청소년들을 교육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교육자들이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로부터 사랑받는 교육자가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청소년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은 그들로부터 모든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돈보스코에게 있어서 친절한 사랑은 다음과 같은 교육자의 마음가짐과 외적인 태도로 표현됩니다. 청소년들 가운데 교육자의 지속적이고 친밀하며 교육적인 현존, 교육자와 청소년들 사이에 스며든 가족정신, 청소년들을 신뢰하는 마음, 청소년들과 맺는 진실한 우정,

청소년들에 대한 깊이 있고 지속적인 관심,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

한 교육자가 청소년들 가운데 자상한 친 아버지처럼, 절친한 친구처럼 교육적이고 구원적 현존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예방교육의 본 모습입니다. 교육자가 친절한 사랑을 실천해 감으로써 한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를 신앙심이 투철한 착한 시민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이 예방교육의 목표입니다.

■ 조현 기자의 <휴심정>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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