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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진보-보수 대화로 ‘민족공동체 통일론’ 공감대 넓혀왔죠”

등록 2020-12-20 18:52수정 2020-12-20 19:43

[짬] 평화통일연대 박종화 이사장

“깊이 알면 간격이 좁아집니다.” 지난 10년 동안 기독교계 보수와 진보가 만나는 ‘만남의 광장’을 이끌어온 박종화 평통연 이사장이 강조한 말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깊이 알면 간격이 좁아집니다.” 지난 10년 동안 기독교계 보수와 진보가 만나는 ‘만남의 광장’을 이끌어온 박종화 평통연 이사장이 강조한 말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달 설립 10년을 맞은 사단법인 평화통일연대(이하 평통연·상임대표 강경민) 상임고문 명단에는 보수 성향의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진보 성향의 역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나란히 들어있다. 10주년 행사에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교회총연합 등 진보와 보수 교계 인사들이 두루 참석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통일운동에 대한 기독교계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를 합해서 대변하자.’ 이 단체 박종화 이사장이 10년 전 평통연 전신인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 연대’를 만든 목적이다.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내 평생 주제는 일치”라면서 “교회 일치와 사회 통합은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한신대 교수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를 거쳐 99년부터 16년 동안 경동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박 이사장이 1986년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받은 박사 학위 주제도 ‘교회 일치’다.

설립 이후 평통연은 세미나와 ‘평화 칼럼’ 배포 등의 방식으로 “평화통일 담론에 대한 기독교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왔다. “10년 전에 보니, 기독교 안에 통일 관련 단체가 여럿 있더군요. 그때 통일운동과 관련해 한국 기독교의 결합된 목소리를 만들 필요를 느꼈죠. 기독교는 특히 분열이 심해요. 교리나 이념, 분파적 성향이 매우 강해 한번 갈라지만 합치지 못하죠.”

평통연에는 개인 회원 150명 외에 개별 교회 30곳이 참여하고 있다. 단체가 한 달에 대략 한차례 여는 대화 모임에는 대략 20~30명이 참석한단다. “교파는 다르지만 공감 능력이 있는 분들이 모입니다. 대화로 진보와 보수 사이에 공통의 광장이 넓어졌어요. 양쪽에 공통분모가 많아요. 평화 공존을 위해 기독교의 공헌이 필요하다는 점은 보수도 인정해요. 둘 다 ‘정치적 갈등을 뛰어넘어 민족공동체를 지향한다’는 큰 틀에서 통일 문제를 보죠. 그게 바로 ‘기독교적 사랑의 현실체’라고 깨달은 거죠.”

평통연은 지난 5년 동안 해외 동포들이 중심이 된 비영리단체 ‘원그린코리아무브먼트’(OGKM)와 손잡고 ‘북한 나무심기’ 운동을 해왔다. “북한을 푸르게 하는 일은 이념성도 없고, 미래지향적이죠. 남·남 갈등을 피하면서 북과 연대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이 활동에는 보수 쪽도 헌금을 잘 냅니다. 보수와 진보의 헌금 액수가 반반입니다. 이 사업으로 우리 단체의 가능성을 봤죠.” 내년 여름에는 산하 기구로 동북아평화교육원도 공식 발족할 계획이다.

‘평화와 통일 위한 범기독인 단체’
2010년 창립 주도 최근 10돌 맞아
재외동포 ‘원그린코리아운동’ 연대
‘북한 나무심기’ 등 미래지향 활동

76년 ‘독일 파송 목사 1호’ 10년 체류
“기독교 좌-우 좁히고 ‘일치’ 추구”

박 이사장이 통일에 관심을 둔 데는 76년부터 85년까지 10년 동안 독일에 체류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단다. 특히 그는 76년부터 6년은 옛 서독 교회에서 목회자로 사역했다. 후반부 4년은 튀빙겐 대학에서 위르겐 몰트만 박사 지도로 박사 논문을 썼다. “제가 독일과 한국의 목사 교환 프로그램이 배출한 1호 독일 파송 목사입니다. 그 시절 한국 교회에 보내는 국외 기독교 지원금의 80%는 독일에서 왔어요. 독일 교회는 유신 체제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한국 교회가 나치 시절에 히틀러와 싸운 ‘고백 교회’와 같다고 해서 적극 지원했죠. 독일에서 제가 한국과 독일 교회 연락을 맡았는데 그때 한국 파트너가 손학규 전 의원, 김진홍 목사, 고 박형규 목사였죠.”

분단국 독일에서 그를 특히 강렬히 사로잡은 모습은 ‘동서독 평화 공존을 위한 교회의 공헌’이었다. “서독 민간 차원에서 동독을 지원하는 일은 사실상 기독교가 맡아 했어요. 서독 정부가 동독을 직접 지원하기 어려우면 교회에 돈을 주고 대신 돕도록 했죠. 동서독 정치범 교환도 서독 정부 자금으로 교회가 맡아 했죠. 서독 교회는 동독을 탈출한 이들을 재사회화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했어요.”

평화통일연대 10주년 행사 참석자들. 평통연 제공
평화통일연대 10주년 행사 참석자들. 평통연 제공

독일 교회를 보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치 추구”의 소중함도 깨달았단다. 그는 독일 교회 요청으로 6년 동안 튀빙겐과 그 주변 교회 350곳을 거의 매주 돌며 설교했단다. 그때 거둔 헌금은 모두 한국 교회로 보냈다고 한다. “독일 교회도 내적으로 갈등이 엄청 심해요. 만나면 치열하게 논쟁하죠. 하지만 갈라지지는 않아요. 다양성을 인정하며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죠. 다양성이 전제될 때 일치가 나옵니다.”

한신대 교수를 하던 93년에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에 머물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독일과 동유럽 국가 방문을 안내하고 통역도 맡았다. “독일 통일을 이끈 한스-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무 장관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섯 시간 대담할 때 제가 통역을 했죠. 겐셔가 ‘남과 북은 등을 지면 안 된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통일하려면 주변 4강에 어차피 돈을 줘야 하는데 사이가 좋으면 돈을 조금 줘도 된다고 했죠. 김 전 대통령이 ‘솔직히 얼마에 통일을 샀냐’고 묻자 겐셔가 600억 마르크(약 300억 달러)라고 대답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통독 당시 옛 소련 지도자인 고르바초프가 일찍 권좌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그보다 덜 주었다고도 했죠.”

지난 10년 평통연 활동의 성과를 묻자 그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독교계 담론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한 점이 가장 크다”며 덧붙였다. “깊이 알면 간격이 좁아집니다. 우리 단체가 깊이 알 수 있는 만남의 광장 구실을 했죠. 전에는 광장이 없었어요.”

단체의 미래 구상을 묻자 그는 “기독교계 평화통일을 위한 두뇌집단 구실을 강화하고 싶다”고 했다. “기독교 안의 극단주의는 좌·우 양쪽에 있지만 소수입니다. 가운데 토막의 품이 상당히 넓어요. 이들을 평화통일의 길로 안내할 필요성이 있어요. 지금 사회는 기독교의 양 극단을 비추고 있는데 이들은 실제로는 미약해요.”

박종화 이사장. 강성만 선임기자
박종화 이사장.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지난해부터 목회자 재교육 기관인 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 이사장도 맡고 있다. ‘사회적 신뢰의 위기’에 처한 기독교를 위한 고언을 구하자 그는 “기독교가 탈종교화해야 한다. 종교의 껍데기를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의 목적은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죠. 지금처럼 종교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종교 이기주의를 벗고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이 돼야죠. 그게 종교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며 교회가 성장하는 길이죠.” 이런 말도 했다. “한국 교회는 대와 소만 있고 중이 없어요. 우리 사회와 비슷해요. 대와 소만 있으면 불건전한 사회이죠. 그래서는 화합할 수 없어요. 중이 자리 잡아야죠. 한국 기독교가 강한 빛과 소금 구실을 하려면 대교회와 성공, 물량주의가 물러가야 합니다.”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에 남과 북이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1장 1조다. 그가 보기에 남북문제를 풀어가는데 가장 소중히 보듬어야 할 정신이다.

“독일을 보면서 우리도 평화 공존이 가능하고 또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사실 독일은 통일을 원하지 않았어요. 미국과 옛 소련, 영국, 프랑스가 통독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동·서독은 공히 분단 속 평화 공존의 길을 걸었어요. 평화가 먼저이고 통일은 나중이었는데 어느 날 통일이 온 거죠. 하지만 한국은 먼저 통일을 주장했고 평화는 먼 길로 나 있었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남과 북이 분단체제와 분단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평화 공존을 인정하면 남북관계가 좋아질 여지가 생깁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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