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신학 전공 대학원생 서총명·홍다은씨
무지개신학교. 이달 초 문을 연 ‘신학교’다. 신학교 5곳을 포함해 8개 대학 학생과 활동가 19명이 설립에 참여했다. 3~4월 첫 학기는 평일 저녁에 몸, 고통, 구약, 연애·가족, 생태·동물권·비건·탈핵·기후 등의 주제를 공부한다. 올해는 3학기 동안 퀴어(성소수자)와 페미니즘, 생태 문제를 집중해 다룬다. 1학기 강좌당 등록생은 10~50명이며, 화요일 수업만 코로나19 사태로 개강이 한 달 미뤄졌다.
언뜻 봐서는 요즘 흔한 인문학 아카데미 같다. 그런데 왜 신학교일까? 지난 20일 홍익대 근처 카페에서 이 학교 설립에 참여한 서총명(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씨와 홍다은(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대학원)씨를 만나 답을 찾았다.
이 학교의 특징은 신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설립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서씨처럼 학교에서 징계를 당한 이들도 있다. 서씨는 재작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6개월 정학 징계를 당했다. 그가 장로회신학대 학부생 때부터 참여한 학내 동아리 ‘암하아레츠-도시빈민선교회’ 소속 학생 8명이 각각 무지개색 중 하나로 상의를 입었다. 채플 뒤에는 기념사진을 찍어 에스앤에스에도 올렸다. 학교는 이 퍼포먼스에 참여한 대학원생 넷을 징계했다. 하지만 이 처분은 작년 7월 법원 판결로 무효가 됐다.
“작년 2학기 복학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오)세찬이가 신학교를 만들면 어떨까 제안하더군요.”(서총명) 오세찬씨는 서씨의 대학원 동료로, 2년 전 함께 징계를 당했다. 장로회신학대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고시위는 이 퍼포먼스를 문제 삼아 지난해 목사고시(목사자격시험)에서 오씨를 불합격시켰다.
왜 ‘무지개+신학교’일까? “주변에서 무지개라는 말을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단어를 써서 이 공간이 안전하다는 걸 선명히 보이고 싶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드러내려고 일부러 신학교라고도 했죠. 한국 신학계에서 감히 붙일 수 없는 이름을 우리가 전유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전복 작업이고, 해방감도 있었죠. 꼭 필요하지만 지금 한국 신학교나 한국교회에서 배제하는 것을 다루겠다는 뜻이죠. 지금 한국교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요.” 서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제가 다니는 장신대 안에서 제한적으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겪은 혐오나 배제, 소외감은 모든 한국교회 젊은이들에게 다 해당해요.”
지난해 11월 학교 설립 기획단 첫 회의부터 참석했다는 홍씨는 지금 대학원에서 여성 신학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다. 참여를 제안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단다. “논문 때문에 바빴거든요. 그런데 첫 모임에 가보니 7명 중 여자는 둘밖에 없었어요. 그걸 보고 한다고 했어요.” 설명이 이어졌다. “저한테 교회는 안전한 곳입니다. 진보적인 교단의 작은 교회를 어려서부터 다니고 있어요. 교회에서 차별이나 혐오도 겪지 않았고요. 신학을 하면서 신앙도 커졌죠. 제가 다니는 대학에서도, 신학교는 배제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 친구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 제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죠. 저도 목사 안수를 계획하고 있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력이 있을 때 제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넓히자는 생각으로 참여했죠.”
신학 전공자들이 왜 성소수자와 페미니즘, 생태를 공부해야 할까? “지금 신학교는 신학 안에서 사회를 바라봐요. 성과 속을 구분해서 배우지 않아요. 그래서 사회에서 다뤄지는 사안들을 따라갈 수 없어요. 그 괴리가 갈수록 커집니다. 학교(무지개신학교)에는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오리라 봤어요. 사회 안에서 메시지를 찾으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는 길을 그들과 함께 찾고 싶었죠. 신앙과 사회의 소통 지점도요.”(서총명) “기독교인의 가장 큰 신앙 고백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거죠. 하나님이 교회 안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이나 생태에 다 있어요. 우리가 지금 배우는 게 신학이 다루지 않아야 하는 주제가 아니죠. 오히려 신학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봐요.”(홍다은)
8개대 19명 ‘무지개신학교’ 설립
올핸 성소수자·페미니즘·생태 ‘집중’
“우리가 추구할 방향성 선명하게” 2년전 무지개색 옷입고 채플 참석
징계받은 장신대 대학원생들 주도
“교회-사회 갈등하는 사람들 오길” 교회가 사회의 민폐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신학교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고 있을까? “제대로 했다면 교회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죠. 교계 권력은 교회가 교단이나 신학교보다 훨씬 커요. 교회 후원으로 신학대가 돌아가니까요. 지금 한국 신학은 현장(교회)이 없어요. 신학생은 교회도 못 쓴다고 해요. 교회는 교회를 유지시키는 신학을 원하거든요.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이 현장에서 필요 없어요. 교회는 신학생들 학점도 안 봅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기만 하면 되죠. 신학생들도 목사가 되기 위한 공부는 동아리 동료들이나 선배들과 하죠.”(서총명) 인문대 소속 학과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홍씨의 전언은 조금 달랐다. “학교 수업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경우도 많아요.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요. 수업 때 교수와 학생이 의견 차이로 논쟁을 하기도 해요. 건강한 의견교환이죠.”(홍다은) 학교 상대로 소송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냐고 하자 서씨는 “싸움에 나를 던지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징계로 제 이름이 알려지면서 교단 안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많이 있었죠. 하지만 학교 압력이나 돈 등 여러 이유로 한발씩 양보하면 지금보다 더 교단의 합리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무지개색 옷 퍼포먼스도 우리보다 2년 앞서 선배들도 했었죠. 그때는 징계 없이 지나갔어요.” ‘무지개 퍼포먼스’ 이후 ‘암하아레츠-도시빈민선교회’도 대학 동아리 등록이 보류됐다. 서씨는 학부 때부터 이 동아리 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재수할 때 외조부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주변에서 겪은 첫 죽음이었죠. 그때 뭘 위해 살까 고민하다 돈보다는 가치있는 삶을 살자고 생각했죠. 그리고 신학대 진학을 결심했어요. 그때는 교회가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수님이 소외된 자나 배제된 자와 함께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 좋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서총명) “신학을 공부하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다 놓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홍다은) 신학생 동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찬성과 반대가 2대8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대학원생들이 목사고시 불합격 반대 성명을 내려고 총회를 열었는데 부결됐어요. 다수가 침묵하더군요. 학교는 지난해 대학원 신입생부터 ‘반동성애 입학 서약’을 받고 있어요. 어기면 입학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해요. 이 학생들이 들어오면 상황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서총명) 무지개신학교 2학기와 3학기는 7월과 11월에 연다. “강좌 말고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나 ‘생태 실습’ 등 여러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생각을 드러내려고요.”(서총명) “무지개신학교는 안전한 공간을 같이 만들어가는 기회의 장이죠. 다른 삶을 꿈꾸는 게 원래 신학의 비전이거든요.”(홍다은) 강의는 교회나 시민단체가 무상 제공한 곳에서 한다. 장소는 공개하지 않는단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반동성애 진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문의, rainbowtheology@gmail.com)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무지개신학교 설립에 참여한 서총명(왼쪽)씨와 홍다은(오른쪽)씨. 강성만 선임기자
무지개신학교 1학기 강좌.
무지개신학교 홍보 포스터.
올핸 성소수자·페미니즘·생태 ‘집중’
“우리가 추구할 방향성 선명하게” 2년전 무지개색 옷입고 채플 참석
징계받은 장신대 대학원생들 주도
“교회-사회 갈등하는 사람들 오길” 교회가 사회의 민폐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신학교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고 있을까? “제대로 했다면 교회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죠. 교계 권력은 교회가 교단이나 신학교보다 훨씬 커요. 교회 후원으로 신학대가 돌아가니까요. 지금 한국 신학은 현장(교회)이 없어요. 신학생은 교회도 못 쓴다고 해요. 교회는 교회를 유지시키는 신학을 원하거든요.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이 현장에서 필요 없어요. 교회는 신학생들 학점도 안 봅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기만 하면 되죠. 신학생들도 목사가 되기 위한 공부는 동아리 동료들이나 선배들과 하죠.”(서총명) 인문대 소속 학과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홍씨의 전언은 조금 달랐다. “학교 수업에서 교회를 비판하는 경우도 많아요.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요. 수업 때 교수와 학생이 의견 차이로 논쟁을 하기도 해요. 건강한 의견교환이죠.”(홍다은) 학교 상대로 소송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냐고 하자 서씨는 “싸움에 나를 던지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징계로 제 이름이 알려지면서 교단 안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많이 있었죠. 하지만 학교 압력이나 돈 등 여러 이유로 한발씩 양보하면 지금보다 더 교단의 합리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무지개색 옷 퍼포먼스도 우리보다 2년 앞서 선배들도 했었죠. 그때는 징계 없이 지나갔어요.” ‘무지개 퍼포먼스’ 이후 ‘암하아레츠-도시빈민선교회’도 대학 동아리 등록이 보류됐다. 서씨는 학부 때부터 이 동아리 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재수할 때 외조부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주변에서 겪은 첫 죽음이었죠. 그때 뭘 위해 살까 고민하다 돈보다는 가치있는 삶을 살자고 생각했죠. 그리고 신학대 진학을 결심했어요. 그때는 교회가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예수님이 소외된 자나 배제된 자와 함께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 좋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서총명) “신학을 공부하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다 놓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홍다은) 신학생 동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찬성과 반대가 2대8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대학원생들이 목사고시 불합격 반대 성명을 내려고 총회를 열었는데 부결됐어요. 다수가 침묵하더군요. 학교는 지난해 대학원 신입생부터 ‘반동성애 입학 서약’을 받고 있어요. 어기면 입학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해요. 이 학생들이 들어오면 상황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서총명) 무지개신학교 2학기와 3학기는 7월과 11월에 연다. “강좌 말고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나 ‘생태 실습’ 등 여러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생각을 드러내려고요.”(서총명) “무지개신학교는 안전한 공간을 같이 만들어가는 기회의 장이죠. 다른 삶을 꿈꾸는 게 원래 신학의 비전이거든요.”(홍다은) 강의는 교회나 시민단체가 무상 제공한 곳에서 한다. 장소는 공개하지 않는단다. 혹 있을지도 모르는 반동성애 진영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문의, rainbowtheology@gmail.com)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