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8일 오후 (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 집무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뒤 묵주를 선물받은 뒤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초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교황 방북이 가져올 파장에 이목이 쏠린다.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이는 북한의 개방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종교는 공산국가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영역이다. 교황은 그 ‘종교’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교황의 방북은 북한 개방을 서구사회에 알리는 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표방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종교의 선교·포교는 사실상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교황의 방북이 곧바로 종교 자유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북한이 서방에 내미는 제스처로서는 최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문재인 대통령-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교황의 방북을 성사시키는 데 아주 좋은 조합이다.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적이었던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비해 정의와 평화 구현에 매우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남미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해방신학의 전통 아래서 신부, 주교, 추기경을 거쳤다. 따라서 독재에 저항한 인권변호사 출신이자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대통령과도 형제애적 우애를 보여주고 있다. 17일 바티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교황청 2인자인 국무원장의 집전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열며 문 대통령에게 특별연설 기회를 제공하고, 바티칸 방송국에 생중계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한국 대통령 가운데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등 전직 4명의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도 이 정도의 배려는 없었다.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 대통령과의 각별한 협력 아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욕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황은 이미 남북화해 무드 조성을 위해 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적극적이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볼 때 그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에 최고 응원군 역할을 해 왔다. 올해 초 평창겨울올림픽 남북 단일팀으로 북한 선수단 참가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남북 단일팀은 스포츠 정신이 세상에 가르치는 대화와 상호 존중을 통한 갈등의 평화로운 해결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축원한 이래, 4·27 판문점 정상회담 이틀 전인 2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특별기도 시간에는 “두 정상의 만남은 화해의 구체적 여정과 형제애 회복을 이끌어낼 상서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며 남북 정상에게 ‘평화의 장인’으로 역할을 하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기를 기원했다. 그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도 수천명에게 “이번 회담에 성모 마리아가 함께할 것”이니 자신과 함께 기도할 것을 권유했다.
교황의 방북은 여느 종교 지도자와는 달리 단순한 평화 제스처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교황들과 달리 해방신학이란 배경을 갖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공산권에도 통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는 쿠바 공산혁명의 지도자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재에 나서 54년간 단절된 양국간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경험이 있다.
남북한은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이데올로기 대결의 종착점이다. 세계적인 종교지도자로선 세기말적 전환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현실 권력의 상징인 미국 대통령보다 뒤늦었지만 ‘평화의 사도’를 자처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선 대사건의 주도권을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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