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종교

‘지극히 작은 자’들을 예수로…장애인들, 세상 속으로 함께

등록 2017-10-18 10:30수정 2017-10-18 10:39

[휴심정] 변방의 북소리4 서울 강서구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 36년간 돌보는
개신교 평신도 황규인 원장

1999년 자기집 내줘 처음 그룹홈
몇 명씩 한 가정 꾸린 빌라 16채까지

그가 벌인 일들은 하나같이 ‘첫 시도’
장애인인권실천 기준도 최초 제정

재활 가능하면 일터 만들어 돈 벌게
농사 짓고 요양할 곳도 마련

부자와 빈자, 남녀노소가 어울려 사는
세상공동체 일원으로 장애인도 사는 꿈 실천
장애인 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황규인 원장.
장애인 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황규인 원장.

서울 강서구 화곡6동 봉제산 아래에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교남소망의집이 있다. 선희씨가 황규인(56) 원장에게 다가와 팔짱을 낀다. 그리고 전날 봉사자들과 함께 만들어 낀 팔찌를 자랑한다. ‘몇살이냐’고 묻자 손가락 두개를 펼쳐 보이며 해맑게 웃는다. 몸은 성인이지만 영락없는 두살배기다. 이곳엔 선희씨 같은 발달장애인 29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무연고’다.

건물 어디에선가 가끔씩 이상한 괴성이 터진다. 황 원장은 “그런 소리들도 다 장애인들이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란다.

그 정도 소음은 이곳에선 오케스트라의 반주 정도다. 그러나 거주인들이 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다르다. 어떤 이는 가게에 들어가 2천원짜리 물건을 들고는 1천원만 내고 가져가겠다고 떼를 쓴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것을 제지하다 보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방에서 자해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들의 삶은 시설 안에 모여 살아도 이처럼 녹록지 않다. 그런데 28명은 아예 시설 밖에 나가 산다. 대부분 빌라를 빌려 보통 장애인 서너명이 한명의 지도교사와 한 가정을 꾸려 지낸다. 그런 집이 지하철 화곡역에서 걸어서 20분 내 거리에 무려 16채다.

격리된 장애인 시설이 설립되는 것도 주민 반대로 어려운 마당에 어떻게 장애인들이 일반인들 사이에 들어가 살 수 있게 됐을까. 일반인들처럼 자고 먹고 일하고 살아가는 것은 많은 장애인들의 꿈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이 밖에 나가면 크고 작은 골칫거리들이 많아져 관리자들은 몇배나 힘들어진다. 더구나 장애인의 부모들조차 “머리도 모자라는 아이들을 밖에서 살게 해 어쩌자는 것이냐”며 “돌보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36년간 이곳을 지켜온 황 원장이다. 이곳은 1952년 그리스도정신의 실천을 표방하며 설립된 기독교 시설이지만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다. 이곳에서 25년간 일했다는 재활부 김진(48) 팀장은 “황 원장을 내가 만화로 그린다면 장애인들을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끄는 기독교 시설들의 목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가 조용히 장애인들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황 원장은 늘 장애인 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니라 장애인들이라는 기준을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어차피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할 건데라고 교사 입장에서 단정하지 말고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일단 장애인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설명해주고 교감하며 그들 편에서 욕구를 최대한 들어주게 한다는 것이다. 훗날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로 알려진, 장애인 특수학교 아이들이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던 2004년, 이곳에선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인권실천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예술치료를 위한 미술 활동을 하는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들.   사진 교남소망의집 제공
예술치료를 위한 미술 활동을 하는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들. 사진 교남소망의집 제공

그가 벌인 일들은 하나같이 기준도 없어서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없던 ‘첫 시도’들이었다. 1999년 처음 그룹홈을 만들 때는 장애인들 이름으로 집을 얻는 것 자체가 어려워 자기 집을 내주었다. 발달장애 자매의 그룹홈에서는 무시당하지 않게 어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돈 계산도 도와주려 매주 이틀씩 3년간이나 함께 지내기도 했다.

황 원장이 두 딸로부터 ‘엄마는 도대체 누구 엄마야’라는 하소연까지 들으며 이렇게 시설 밖 그룹홈을 만들어준 것은 장애인들에게도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발달장애인들도 실은 부모와 가족을 몹시 그리워해 처음엔 방송에 내 부모를 찾아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부모에게 가겠다고 해도 데려가지 않고 나중엔 연락을 끊어버린 일이 많았지요. 장애 자체만으로도 삶이 너무도 버거운데 두번 세번 버림받은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래서 그는 장애인들의 혈육 찾기를 포기하고 ‘장애인 가정’인 그룹홈을 만들어갔다. 재활이 가능한 장애인들 입장에서 일할 곳이 필요하자 열림일터를 만들어 직접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일찍 노화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농사도 짓고 요양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해지자 파주엔 어유지동산을 만들었다.

늘 시키지도 않는 일을 앞서 하느라 이곳에선 재활용품까지 주워 팔아가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왔다. 최근 전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 회원들이 전례없이 그를 95%의 찬성으로 회장으로 추대한 것도 그의 ‘신화들’을 인정한 때문이었다.

지능지수가 낮아 몸은 어른이지만 아이같은 발달장애인의 재롱을 지켜보며 웃는 황규인 원장
지능지수가 낮아 몸은 어른이지만 아이같은 발달장애인의 재롱을 지켜보며 웃는 황규인 원장
하지만 도전은 더 많은 골칫거리를 낳는 게 이 분야다. 소리가 그룹홈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아침 7시 전에는 창문도 열지 말라고 하고, 옷을 늘 깔끔하게 입도록 하고 인사도 잘하도록 교육하지만, 장애인 혐오자들이 그룹홈 앞에 쓰레기나 썩은 젓갈을 일부러 버린 것을 보면 속이 상해 잠을 이루기 어렵다. 얼마 전엔 그렇게 성교육을 시켰는데도 여성 장애인이 동네 할아버지 꼬임에 넘어가 노래방과 모텔까지 따라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자식을 버린 부모가 어렵게 자립기금을 마련한 장애인 자녀의 돈을 뺏어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는 장애인들을 장애인들만의 담장 안에 가두지 않고 부자와 빈자, 남녀노소가 어울려 사는 세상공동체의 일원으로 어울려 살게 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장애인들이다. 그는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이들보다 순수한 어린이들이 있느냐”며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교남소망의집에서 만들어졌다가 담장 밖 인근에 세워진 교회도 있고, 일요일이면 이 안에 와 예배드리는 목사도 있다. 그러나 황 원장은 장애인들이 일반인 교회들에서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잖아요.”

따라서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크리스천들도 예수님들을 영접할 수 있게 그들 곁으로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약자로 온 예수를 시설이나 장애인 교회 안에만 가두지 않고 세상 속으로 내보내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 그가 믿는 진정한 ‘복음화’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