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이의 발자취】 한울안운동 대표 한지현 법사 영전에
2006년 9월 한지현(오른쪽 셋째) 대표를 비롯한 한울안운동 회원들이 ‘북한 아기에게 분유보내기’ 캠페인을 펼쳐 모은 분유를 컨테이너에 실은 뒤 기념촬영을 했다. 사단법인 한울안운동 제공
탁월한 웅변가이자 열정의 개척자 2000년 북한아이 분유보내기운동
아프리카·이주민 여성 자립지원도 ‘변화하는 여성· 변화시키는 여성’
원불교 여성운동 이정표이자 유훈 “더불어 하면 쉽고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세상의 올곧은 희망숲이 되고자 했던 한울안운동 한지현(법명 지성) 대표가 안타깝게도 지난 19일 우리 곁을 떠났다. 일생을 종교와 인종, 이념 등 온갖 종류의 차이와 차별을 넘어 ‘훈훈한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온 한 대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프리카 케냐의 키툴루니 청소년직업훈련원과 어린이집 건립에 혼신을 다했다. 가난과 무지의 대물림을 극복하고 자력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길 염원해서이다. 한 대표는 “이 세상의 사랑의 온도를 1도 올리기가 얼마나 힘든가요. 우리같이 지극히 평범한 주부들의 알뜰함과 헌신이라면 반드시 이뤄낼 수 있어요”라며 여성의 힘을 깨우쳤다. 한 대표가 자주 하는 말이다. “한국 속담에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습니다.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만 덜어낸다면 한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만시일반’ 정신으로 모든 사람들이 한 숟가락씩을 기쁘게 덜어낸다면 세상은 틀림없이 훈훈하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는 탁월한 웅변가요, 열정의 개척자였다. 한 대표가 주창한 ‘한울안’이란 ‘전세계는 한 울타리 안의 한 가족이며, 한 식구’라는 뜻이다.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라는 원불교 일원(一圓)의 진리에 바탕을 둔 그의 행보는 늘 당당했고, 치우치지 않았으며, 따사로왔다. 그는 항상 남 먼저 사회적 이슈를 찾아냈다. 6·15 공동선언이 있기도 전인 2000년 2월 북한 아이들에게 분유보내기운동을 전개했다. 초기 3년간 ‘빨갱이’ 손가락질에도 컨테이너 1개 분량의 분유를 모아 전달할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3천명이 시작한 운동은 1만명으로 늘어나 범시민운동이 됐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과 한국 이주민 여성들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지원센터 건립 또한 한울안운동이 펼치는 건강한 시민운동의 모델이 되었다. 한 대표는 “엔지오(NGO)는 권력이 개입하지 않고 작은 것을 키워가는 가장 순수한 공동체요, 시민운동이다”라며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개인적 영성추구와 선행은 더 많아질 것이니, 종교의 울을 넘어선 실천적 연대와 참여를 예측하기도 했다. 그의 정신엔 오직 환경운동, 평화운동, 종교연합운동뿐이었다. 철저한 수행자이기도 했던 그는 일생의 공부표준을 ‘지자본위’(智者本位)와 ‘이사병행’(理事竝行)에 두었다. 어떠한 사람이든 실행과 덕행, 지식, 학문 등이 나 이상이면 그를 스승으로 알고 모셨다. 또한 공부와 사업을 추진할 때 말과 행동에 신용을 잃지 않는 절대적 구도자였다. 한 대표는 우리 시대 여성인권과 여성인재론을 일생의 화두로 삼고 지난 20여년간 원불교여성회에 공들여왔다. 이제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집단지성들이 자라고 있다. 그의 갑작스런 열반에 모두가 슬퍼하는 가운데에도 스스로 주인이 될 것을 자임하는 까닭이다. 마지막까지 그의 유훈이 될 ‘변화하는 여성, 변화시키는 여성’은 우리 모두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당신이 세상의 희망이라면, 무엇으로 그 희망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촌철살인 같은 그의 물음이 우리의 골수에 생생히 사무친다. 안세명/원불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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