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독립경영 성공’ 불광미디어 류지호 대표
불광미디어 류지호 대표.
‘월간 불광’·출판사 자생력 외려 커져
10년새 매출 3배 늘고 직원도 2배 많아져 어릴때 교통사고로 한쪽다리 잃어
기독교집안서 노장철학 끌려 불교로
“시대적 아픔 해결할 가치 공유할터” 이 회사에는 장기 근속자가 적지 않다. 근속 20년이 되면 순금 20돈으로 만든 불상을 안겨주고, 25년이 되면 파트너와 유럽 여행을 시켜준다. 최근엔 고민이 많다는 직원이 가고 싶어하는 런던에서 생활해보록 항공료와 3개월 체류비를 지원했다. 그뒤 직원은 출판사를 떠나 다른 길을 택했지만, 그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호황업계나 대기업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사람 중심’ 경영을 장기 불황 속의 출판계에서 추구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월간 불광>은 불교 잡지 가운데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지난해 500호를 넘었고 올해 창간 43돌이다. 불광출판사도 단행본 50권을 발간해 불교계 최대다. 불광미디어는 ‘불광운동’을 주창하며 서울 잠실에 광덕 스님이 창건한 불광사가 모태다. 10년 전까지 불광잡지·출판사는 불광사 불교용품점에서 나오는 수익금에 의존해 불광사 옆에서 유지해왔다. 류 대표는 자신이 이 회사를 맡으면서 불교용품점 운영권을 포기하고, 사무실도 조계사 옆으로 옮겨 자생을 모색했다. 사찰에만 경영을 의존하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경전과 큰스님 일대기와 법어를 묶어내는 수준이던 불교 출판계의 관행도 과감하게 탈피했다. 현대인들의 관심을 반영해 심리치료와 정신분석, 상담, 명상, 서구불교까지 분야를 확대하고, 편집과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변화시켰다. <월간 불광>도 판형을 키우고 전면 칼라화했다. <월간 불광>은 100퍼센트 유료화해 매달 1만여부를 발행하고 있다. 모사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외려 매출은 10억에서 30억원으로 늘고, 직원은 9명에서 2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잡지사와 출판사를 합쳐 ‘불광미디어 주식회사’를 출범시키며 디지털북과 팟캐스트 등을 통해 또 한번의 업그레이드를 시도중이다. 불교 이외 책을 내는 <원더북스>도 만들었다. 같은 분야 명강사 3명씩을 동시에 초청하는 ‘붓다 북 퀘스천’ 강연회도 정기적으로 연다. 누리집도 불교계 책·논문·강좌들까지 모두 소개하도록 개편 중이다. 그는 애초 가톨릭 모태신앙이었다. 가톨릭학교인 동성고를 나왔고 견진성사도 받았다. 미국에서 사는 그의 5형제도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앙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대표적 불교전도사가 됐을까. 류대표는 훤칠한 키지만 실은 왼쪽 무릎 아래 의족을 한 장애인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상경한 지 1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런데도 초·중 때까지는 의족을 한 채 만능 스포츠맨으로 활약할만큼 성격이 밝았다. 그런데 고교에 진학하자마 다리 절단 부위에 종기가 생겨 체육·교련시간 내내 교실에만 혼자 앉아 있으면서부터 장애를 자각하게 되고, 소설과 시를 읽으며 인생과 세상의 부조리에 관심을 갖기 사작했다. 고교 졸업 뒤엔 2년 동안 진하게 방황도 했다. 청계천 헌책방들에서 <씨알의 소리>와 <사상계>, <뿌리깊은 나무> 같은 잡지들을 구해 읽고, 향린교회로 함석헌의 장자 노자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책을 통한 불교와 인연도 그때 시작됐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 입학해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그의 인생은 ‘불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대학생불교연합회 간사를 시작으로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 대승불교승가회 등 불교개혁 단체들에게 활동가로 일했다. 1994년 종단개혁 때는 개혁의 기획자였던 현응 스님을 도와 몇개월간 성명서와 유인물을 밤새워 쓰는 실무를 맡기도 했다. 그뒤 총무원 기획조정과장과 문화사업단 초대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이어 형제들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1년쯤 머물던 그는 현지까지 날라와 불광출판사를 맡아달라는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다시 귀국했다. 그는 “지홍 스님이 틀어쥐지 않고 개방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배려로 자율경영을 해볼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류 대표는 회사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1년 휴가를 자청해 아프리카와 중남미, 인도 등을 돌았다. 그는 “처음 1개월은 아내와 다음 4개월은 딸과 여행하면서 과거 너무 일에만 매달려 가족들의 감정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불교적 가치를 더욱 체화하는 과정이 되었단다. 그는 “불광미디어를 통해 불교 신도 몇명 늘리는 일이 아니라 경쟁과 욕망, 소통 부재 등 시대적 아픔을 해결할 불교적 가치를 널리 공유하는 모델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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