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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아, 목사님, 당신은 한국 교회이면서 한국 현대사입니다

등록 2016-08-21 18:57수정 2016-08-21 19:27

고 박형규 목사께 바치는 추모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형규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1960년대 초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 수업할 때였습니다. 저는 학부를 다니고 있었으니 직접 배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뵌 이후 저는 목사님 먼발치에 혹은 바로 옆에 줄곧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었던 시간은 짧았습니다. 저같이 범속한 사람이 가까이하기에는 목사님은 참으로 깊고, 뜨겁고, 따뜻하고, 맑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 옆에 함께한다는 것은 내려감이었고, 고난이었고, 십자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늘 목사님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이제는 목사님이 아니 계십니다.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아, 목사님,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스승입니다.

1965년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투쟁이 일어났을 때 목사님을 다시 만났고, ‘33인 반대성명’ 거사를 준비하시는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사회문제에 예언자적 발언을 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 저분, 역시 저분이구나’ 했습니다. 그 일로써 목사님은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반세기 동안 깊은 치욕의 잠에 취해 있던 한국 교회를 깨웠습니다. 민주·민중·민족이라는 한국 교회의 거룩한 전통을 다시 이어받는 단초를 만드셨습니다. 목사님, 뉘라서 이런 거룩하고 큰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아, 목사님, 당신은 한국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거룩한 전통을 이어가기에 너무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셨던 거지요. 그래서 목사님은 인재를 기르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목사님 주변에는 인재들이 바글거렸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알아주고, 존중하는 스승을 우리가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고달파하면 함께 고달파하는 스승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 목사님, 당신은 인재 광부입니다.

저들이 퍼져 민중의 고통의 현장으로 갔고, 도시빈민, 노동자, 농민의 현장으로 갔습니다. 저들이 퍼져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섰습니다. 목사님은 그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감옥이라도 가게 되면 거기까지 따라가서 함께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껴안으셨고, 그들을 내려치는 매에 자기 몸을 던져 대신 맞으셨습니다. 아, 목사님, 당신은 어느새 한국 현대사입니다.

1980년대는 다시 교회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 독재를 이은 전두환의 철권통치는 인권·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었던 교회를 적으로 삼았습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회유와 협박의 대상이었습니다. 기장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에게 총회장이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고사하셨지요. 그러나 결국 받아들이셨습니다. 직전 부총회장이 총회장이 되는 불문율을 깬다는 비난마저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쿠데타를 하면서까지 자리를 탐하고, 명예를 밝히냐는 비난도 온몸으로 버텨내셨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감옥살이보다 더 힘드셨지요. 그러나 목사님을 총회장으로 모셨던 것은 교회가 다시금 민주화와 평화통일의 축을 세운 일이었습니다. 아, 목사님, 당신은 또다시 한국 현대사입니다.

서울제일교회에서 목사님을 몰아내려는 전두환의 공작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어떤 경우보다 힘들어하시고 아파하셨던 것을 저는 압니다. 공작에 이용당하더라도 교인인데 저들이 배반하는 것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목사님, 그때 목사님은 정말 힘들어하셨습니다. 반대자 교인과 맞부딪히지 않으시고 거리로 나가 노상예배를 드리셨던 것은 그것이 그들과의 싸움이 아니었으며, 반민주 독재정권과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만 6년 길 위의 예배라니요. 그러나 눈을 감으실 때 이른바 반대자 교인들을 생각하셨을 것이라 저는 짐작합니다. 목사님, 당신은 그런 목사, 그런 목회자이십니다.

김상근 목사
김상근 목사
이제 목사님은 우리 곁에 아니 계십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삶의 교과서로 펼쳐져 있습니다. 항상 주셨던 신뢰를 허물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들을 우리가 압니다. 목사님, 사랑하는 박형규 목사님, 당신의 회고록 말미에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할 따름이라 하셨습니다. 목사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하나님 품에서 고이 쉬십시오. “오랜 세월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온 지난날의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신 말씀을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멀찍이 떨어져 따라갔던 제자 김상근이 이렇게 당신을 추모합니다.

김상근 목사,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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