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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선원사 불화서 태극기 그림 발견…“1910년대 문양과 닮아”

등록 2023-02-21 15:12수정 2023-02-22 02:44

남원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도에서 나와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서 발견된 태극기. 선원사 제공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에서 발견된 태극기. 선원사 제공

일제강점기 초기에 제작된 사찰의 불화에서 항일·독립 의지를 담아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태극기가 발견됐다.

전북 남원 선원사 주지 운문 스님은 21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선원사 명부전에서 기도하던 중 지장시왕도 괘불탱화에서 태극기 그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태극기는 지옥을 관장하는 10명의 왕 가운데 제6대 왕인 변성대왕 관모에 그려져 있는데,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8.5x3㎝)로 태극의 지름은 2.2㎝이다. 태극의 양은 홍색, 음은 뇌록색으로 채색돼 있으며, 양 태극을 백색이 둘러싼 모양새다. 위쪽에 건괘와 이괘, 아래쪽에 곤괘와 감괘를 배치되어 있다.

사찰에서 명부전은 사람이 죽은 뒤 살아있을 때의 일을 심판받는 명부를 상징하는 곳으로, 죽은 자들을 모두 구원하고 마지막에 지옥에서 나오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사후에 10번의 재판을 주관하는 10명의 왕들을 모신 전각이다. 주로 영가의 위패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곳이다. 지장시왕도 하단의 화기( 畵記·그림의 내력을 쓴 기록)에 따르면 태극기가 제작된 때는 1917년(일제 대정6년) 11월5일에서 17일로, 당시 주지 기선 스님이 당대 최고의 학승이자 화엄사 주지인 진응 스님에게 괘불탱화 제작 전 과정을 증명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도. 선원사 제공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도. 선원사 제공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본존인 지장보살상 뒤에 배치된 지장시왕도. 지장시왕도에 등장하는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선원사 제공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본존인 지장보살상 뒤에 배치된 지장시왕도. 지장시왕도에 등장하는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선원사 제공

운문 스님은 “10명의 명왕 중 칼산으로 된 도산지옥을 관장하며 죄지은 자들을 심판하는 변성대왕의 관모에 태극기를 그려 넣음으로써 총칼로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일제가 결국 총칼로 망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극기 연구 전문가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 송명호씨는 “불화 중에 태극기가 그려진 것은 처음”이라며 “‘항일지장시왕도’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근대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송씨는 “태극기가 1910년대 이후 사용된 독립운동 시대의 태극기 문양과 같아, 오늘날 형태로 정착되기 전 단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일제는 1911년에 칙령 19호를 공포해 태극기를 말살하고 대신 일장기를 걸도록 했기 때문에 지장시왕도 태극기는 독립을 바라는 불교계의 서원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도를 그린 내력이 담긴 화기. 선원사 제공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지장시왕도를 그린 내력이 담긴 화기. 선원사 제공

송씨는 “태극기 제작기법과 건리, 감곤 배치 등의 양식은 독립운동기와 해방 후 미 군정기에도 이어져 왔는데, 선원사 지장시왕도 태극기도 같은 형태”라며 태극기가 그려진 시점과 관련해선 “1910년대 탱화 제작 등 모든 예술 행위가 일제의 검열을 받았기 때문에 지장시왕도 제작 초기에 그려진 것은 아니며, 검열을 피하고자 이후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런 이유로 눈에 띄지 않도록 작게 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장시왕도 태극기 아래 화기엔 당시 호남 불교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인 진응 스님이 제작 과정을 증명한 기록이 남아있다. 진응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사실이 독립운동사 자료에서 확인되며, 화엄사를 본사로 승격시키고 일본 불교 종파인 조동종에 맞서 조계종 전신 임제종을 설립해 우리 불교를 수호하는 데도 앞장섰다. 선원사는 문화재 당국에 지장시왕도 태극기 발견을 신고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국가등록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원사는 신라 49대 헌강왕 원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에서 순절한 승병과 백성, 장수, 사병 등 만인의사를 비롯해 독립투사 등의 충절을 기리고, 극심한 가뭄에는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기 위해 남원 시민들과 함께 괘불재를 지내는 등 남원 지역민들의 애환을 함께해온 사찰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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