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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종교

“1970~80년대 군사정권의 가혹한 폭력 세계 알린 메신저였죠”

등록 2022-03-01 18:48수정 2022-03-17 11:57

[가신이의 발자취] 파울 슈나이스 목사를 기리며

2013년 슈나이스(왼쪽) 목사가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참가했을 때 필자 이해학 목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해학 목사 제공
2013년 슈나이스(왼쪽) 목사가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참가했을 때 필자 이해학 목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해학 목사 제공
중국 선교사 부친 둔 독일인
1974년 한국 와 유신독재 여론화
세계 곳곳 지지서명·기도회 끌어내
‘5월 광주 메신저’로 5월상 받아
방대한 현대사 자료 국편 기증

“연대의 영성이 몸에 밴 분이죠”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은하수를 건너는 파울 하인리히 슈나이스! 당신의 시원한 발걸음이 밝은 빛으로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지난 2월 11일 독일에서 별세한 슈나이스 목사가 가방 하나 덜렁 들고 우리에게 온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1974년 성남 주민교회 교인들은 그에게 매달리듯 하소연하였다. ‘우리 전도사님, 면회도 못 하게 해요. 이 추위에 침낭도 안 받아줘요. 무슨 죄가 있어 15년 징역이래요? 긴급조치는 악법이니 철회하고 민주화를 이루라는 주장이 왜 죄가 되나요? 통반장을 동원해 주민교회 나가면 사업 망한다고 소문을 내요. 우리는 어떻게 해요?’

1974년 대한민국은 암흑 자체였다. 이 어둠의 계절에 그가 우리에게 온 것은 아침 햇살 쏟아지는 동편으로 난 창과 같았다. 연일 방송과 신문들은 우리 구속자들을 역적인 것처럼 비난했고 우리가 속한 기독교장로회 총회조차 구속자들을 외면했다. 그때 고인은 국가폭력의 암흑세상을 세계에 알리는 메신저 구실을 했다. ‘아시아교회협의회’(CCA)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 한국 독재정부의 잔혹한 폭력상을 세계에 여론화하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은 한국 피압박 민중의 봉기를 살아있는 신앙고백으로 규정했다. 세계 각국에서 지지성명과 기도회와 모금운동이 일어났다. 구속자들 덕분에 한국교회는 살아있는 신앙 고백적 교회로 불렸고 총회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고인은 주민교회 건축을 위해 모금했고, 내가 세번째 구속되었을 때는 ‘이해학 알기’ 행사 등을 하며 티셔츠를 만들어 팔았다.

독일 소도시 바인가르텐에 있는 고인의 사택 2층 서재에는 그가 한국에서 몰래 일본을 거쳐 유럽으로 전달한 성명서 등 1차 자료들이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민주화운동과 반독재투쟁을 하던 단체들과 재야인사들이 발표한 자료들인데 그가 위험을 무릅쓰며, 한때 한국 정부로부터 추방까지 당하면서 모은 것들이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이 자료들을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했다.

필자가 1990년 범민족대회를 하고 베를린에서 ‘남-북-해외 3자회담’을 한 것 때문에 세번째로 1년6개월간 징역을 살고 나온 이후 슈나이스 목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사역하는 바인가르텐 교회와 성남주민 교회의 자매결연을 제안했다. 그 뒤로 두 교회는 2년마다 15명 정도로 구성된 방문단의 상호방문을 시작했다. 매해 2월에는 세계평화를 위해 두 교회가 화상기도회를 했다. 민간 친선 교류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체류 기간에는 교인들 집에서 민박하며 친교를 나누었다. 우리는 갈 때마다 그 지역 시장실에서 인사하고 역사 문화를 체험했다.

슈나이스와 바인가르텐 교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는 서울 남산 안중근공원을 찾았고 광주 망월동 5·18국립묘지를 거쳐 무등산도 올랐다. 어느 해는 서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에 참가했다가 헬기로 뿌리는 최루탄가루를 맞으며 산을 넘어 손잡고 도망치기도 했다. 어느 해는 전라도 바닷가에서 갯벌 체험을 했고, 설악산과 대포 항에서는 생선이 펄떡펄떡 뛰는 어시장을 즐겼다.

197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증진에 기여한 고인은 특별히 광주민중항쟁의 메신저로서 ‘5월상’을 받았다. 고인은 또 제주 강정마을 투쟁을 취재하기 위해 수없이 한국을 드나들면서 강정마을을 세계 교회에 알렸다. 이런 고인의 활동을 우리 정부가 훈장을 내려 감사를 표명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더해 한국교회가 잊어서는 안 될 다른 공적도 있다. 고인이 독일 서남지구선교회(EMS)를 통해 한국신학연구소와 함께 1980년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여성 수도원 공동체인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를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독일동아시아선교회 파트너인 일본 도미사카센터와 한국신학연구소가 1990년대 초 공동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교과서 다시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지원한 것도 그가 남긴 소중한 기여다. 당시 북한 주체사상연구소도 추진 단계에서나마 참여했으니 의미 있는 연구 작업이었다고 하겠다.

고인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그 가지가 어디까지 뻗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경험한 가지만 말할 뿐이다. 하물며 그의 뿌리를 알 길이 있을까. 격동기 중국 선교사였던 선친으로부터 중국과 일본 문화를 접하고 일본인과 결혼하고 한국의 탄압 받고 고난받는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사랑한 슈나이스 목사. 기독교 신앙과 아시아의 영성을 하나로 접목한 그의 영성의 깊이를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슈나이스 목사를 연대의 영성이 몸에 밴 사람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은하수를 건너 그를 기다렸던 안병무, 강원용, 오재식, 서남동, 김관석, 박형규를 기쁘게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독일이라는 자신의 성 안에 머물지 않고 성 밖으로 나와 걸어온 길 또 동아시아 평화를 향한 길 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를 다시 만날 것이다.

이해학/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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