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이성지 발굴 현장 모습. 사진 가톨릭 전주교구 제공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복자(성인의 전 단계)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이어진 박해로 숨진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사후 200여년 만에 발견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일 교육문화공간 ‘호남의 사도 유항검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3월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이성지의 바우배기에서 순교자로 추정되는 유해와 유물이 출토됐다”며 “검사한 결과 세 복자의 유해로 판명했다”고 밝혔다.
초남이성지 가톨릭 순교자 유해발굴 현장. 사진 가톨릭 전주교구 제공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전주 남문 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됐다. 두 사람은 조선교회에 내려진 제사금지령에 따라 조상 신주를 불태우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가 죽임을 당했다. 한국천주교회는 이들을 첫 순교자로 기록했다.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바오로의 동생이다. 형의 순교 10년 뒤인 1801년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을 받고 순교했다. 셋 모두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세 복자의 유해가 발견된 곳은 또 다른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이 1914년 치명자산성지로 이전하기 전까지 묻혀 있던 곳이다. 전주교구는 이곳을 성역화하는 작업 과정에서 무연고분묘를 개장하다 유해와 함께 ‘백자사발지석’을 발견했다. 지석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 소재를 기록한 것이다.
초남이성지 순교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 사진 가톨릭 전주교구 제공
전주교구는 “전문가에 의뢰해 백자사발지석의 명문을 판독한 결과 각각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의 인적 사항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또 묘지와 출토물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서도 묘소 조성 연대, 출토물의 연대가 두 복자가 순교한 1791년과 시기가 부합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두 유해에 대해 성별검사, 치아와 골화도를 통한 연령검사 및 해부학적 조사, 와이(Y)염색체 부계 확인검사(Y-STR)를 진행해 각각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유해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 다른 묘지의 유해는 윤지충 바오로 유해와 해부학적으로 유사했는데, 사료 검토, 유해 정밀 감식 등을 거쳐 윤지헌 프란치스코와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남이성지의 순교자 유해. 사진 가톨릭 전주교구 제공
초남이성지의 순교자 유해. 사진 가톨릭 전주교구 제공
초남이성지의 순교자 유해. 사진 가톨릭 전주교구 제공
전주교구는 세 순교자의 유해가 천주교를 넘어 조선시대 형벌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 문화적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고산 윤선도의 6대손 윤지충은 1784년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실의> <칠극> 등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고종사촌 정약용의 가르침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상연은 사촌 윤지충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로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했다.
윤지충은 1790년 당시 청나라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에 제사금지령을 내리자 권상연과 함께 유교식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또 1791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천주교 예법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면서 둘은 피신했지만, 윤지충의 숙부가 대신 잡혀가자 자수했다. 결국 둘은 1791년 11월13일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당했다. 당시 윤지충은 32살, 권상연은 40살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