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니다] 고 이종학 선생 영전에 드리는 글
2006년 ‘해바라기 발전기’를 손수 개발해 햇빛발전소를 지은 고 이종학 선생. 아들 이철순씨 제공
1950년 ‘보도연맹 학살사건’ 목격자
1997년 유골 수습 나서 공원묘지 안장 1974년 서울 공무원 그만두고 귀향
민둥산 개간해 밤나무 과수원 일궈
풍력·태양광발전 등 대안에너지 ‘실천’
‘조선일보반대 옥천시민모임’ 최고령 회원 충북 옥천의 큰 어른 이종학 선생이 한 세기의 삶을 뒤로 한 채 지난달 떠나셨다. 그는 1922년 옥천군 동이면 평산리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 뒤늦은 12살에 죽향초등학교 2학년으로 입학했다. 17살 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공업학교(현 한밭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철도청 대전사무소에 입사해 토목기사로 일하던 중 23살 때 해방을 맞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고향으로 피난을 왔던 선생은 민족 비극의 현장을 목격했다. 1950년 7월 초순께 일이다. 소를 몰고 논으로 일하러 나가는데 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몰려오더니 들일하던 사람들에게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 보니 언덕에 약 20m 길이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잠시 후에 트럭 두 대가 전깃줄로 포박한 사람 수십 명을 싣고 와서 구덩이 앞에서 총살한 다음 묻어버렸다. 선생은 그렇게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목격자가 되었다. 1961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독재시대가 열렸다. 선생은 서울 교통부로 옮겨 근무하고 있었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양심은 숨기고 침묵을 지켜야 했다. 가장으로서 평안한 가정을 지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할 말은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군 출신들의 간섭이 횡행하는 직장생활에 넌덜머리가 났다.
1969년 서울에 살던 시절 고 이종학·김옥희 선생 부부와 5남매의 가족사진. 아들 이철순씨 제공
생전에 나란히 찍은 고 이종학·김옥희(2016년 작고) 선생 부부의 기념사진. 아들 이철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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