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를 1천원만 받아 ‘상계동 슈바이처’로 불렸던 김경희 은명내과 원장이 22일 오후 6시25분 별세했다. 향년 101.
1920년 서울에서 구한말 궁의(한의사)의 손자로 태어난 그는 배재고보 3학년 때인 1936년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기도를 했고 평생 그 약속을 지켰다. 1941년 세브란스의전 2학년 때부터 서울 답십리 조선보육원 아이들을 치료했고 광복 이후 일본과 만주 등에서 귀국한 무의탁 동포들도 무료로 진료했다. 휴전 뒤 일본 교토대 의학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1973년부터 10여년 동안 답십리·청계천·망원동·한강 뚝방 판자촌 등 서울은 물론 전국의 빈민촌을 돌며 무료 진료 봉사를 했다. 1984년 대표적인 빈민촌인 상계동에 ‘은명내과’를 열고 89년 전국민의료보험 시행 때까지 ‘천원 진료’를 해 널리 알려졌다. ‘은명’은 부친(김은식 장로)과 모친(서명신 권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85년 은명장학회를 설립해 2천여명의 학생을 지원했고 무료 독서실 운영, 무의탁 노인과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심부름 서비스, 불우한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도 펼쳤다. 심장수술후원회를 결성해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2000년에는 중계본동 104번지와 상계1동 노원마을의 가난한 100가구를 ‘은명마을’로 묶어 주민들의 건강과 살림살이, 경조사까지 챙겼다. 2004년 노환으로 병원을 닫고 은퇴할 때까지 독거노인을 위한 왕진을 다녔다.
1996년 4월에는 경기도 하남과 서울 상계동 토지 등 평생 모은 전 재산 53억원을 연세의료원과 모교를 위해 기부했다. 2005년 세브란스병원은 신축 대강당의 이름에 김 원장의 호인 ‘은명'을 붙여 뜻을 기리고 있다. 고인은 서울 정동제일교회 수양관 벧엘동산에 묻힌다.
유족은 부인 임인규씨, 아들 교인·교철, 딸 교진·교영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7시다. (02)2227-7550.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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