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별세한 고 김선택 선생의 영정. 사진 서강대민주동문회 제공
지난 18일 오전 김선택 선배님께서 우리 곁을 영영 떠나셨습니다. 향년 66. 우리는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며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김 선배님의 별세 소식에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함을 느낍니다. 지난 4년 가까이 병상을 오가며 꿋꿋이 투병해오셨기에 돌연한 심정지로 황망히 돌아가실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와병 이전까지 누구보다 강건하고 활발했던 선배님을 기억하는 우리는 지금 그의 부재를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고인은 1970년대 유신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세대,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세대입니다. 충남 논산에서 나고 자라 1974년 서강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래 박정희 정권과 긴급조치에 반대해서 대학 간 연합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었고, 이후 민주화운동의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의 정책위원이자 <민주화의 길> 편집위원,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정책실 차장,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집행위원장 등으로 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책임자로 활동했습니다. 선배님은 문익환 목사님을 모시고, 김근태 의장님과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공권력으로부터 감시와 수배를 받아 고단한 시절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인은 한국 사회의 성격과 문제점을 늘 연구하면서 민주화운동의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 김선택(맨 오른쪽)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유서대필 조작 사건’ 22년 만인 2014년 2월 14일 대법원의 ‘자살방조 혐의’ 무죄확정 판결을 직접 방청한 뒤 밝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러 가고 있다. 사진 민중의소리 제공
고 김선택(가운데)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이 2014년 2월 2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방문해 앞서 2월14일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검찰의 상고에 항의하는 서한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 엽합뉴스
선배님은 더불어 서강대 민주화운동의 ‘좌장’이었습니다. 병마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을 맡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의 재심청구 투쟁에 앞장서 끝내 무죄를 이끌어 냈습니다. 특히 서강대민주동문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서 후배들을 위해 큰 관심과 열정을 쏟았습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목격하고, 그 진상을 가장 먼저 서울에 알리고자 온몸을 던진 김의기 열사를 알리고 기리는 일에도 헌신했습니다.
고 김선택(맨왼쪽) 선생이 2015년 6월 교정에서 ‘김의기 열사 35주기 추모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서강대민주동문회 제공
뿐만 아니라 전국민주동문회연합 공동대표도 맡아 나이 차이를 불문하고 후배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격의없이 어울렸습니다. 고인과 같은 무수한 선배님들의 이러한 헌신이 모여 우리 사회가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민주사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고인의 벗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민주주의자 김선택을. 고인의 후배들은 후회합니다. ‘형님’과 더 오래 자주 함께 하지 못한 지난 시간들을. 그리고 우리는 기억하고 존경합니다. ‘형님’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향한 무한한 열정을.
선배님, 이제 심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안식처인 ‘모란공원’에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서강민주동문추모모임
고 김선택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위원장 장준영 한국환경공단 이사장)는 20일 오전 서울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결식을 한 뒤 경기도 성남 모란공원에서 안장식을 마쳤다. 사진 서강대민주동문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