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저서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 출판기념회 때의 김낙중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고문. 사진 에큐메니안 제공
통일운동가 김낙중 전 민중당 대표가 29일 오전 12시50분 별세했다. 향년 89.
193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농업중학교(서울농업대학의 전신)와 서울중학교를 다니다 한국전쟁을 만났다. 전후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1955년 ‘통일독립청년공동체 수립안'을 작성해 경무대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청원서를 전달하려다 치안국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 적이 있다. 이어 그는 ‘통일~수립안’을 들고 임진강을 넘어 월북했다가 북쪽에서도 간첩 혐의로 고초를 겪다 1년만에 휴전선으로 다시 넘어왔고, 역시 간첩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 판결로 나왔다. 그뒤 고려대 경제학과를 거쳐 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5·16쿠데타 이후 이른바 ‘김낙중 남파간첩 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것을 비롯해, 73년 ‘간첩예비죄’로, 9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구속까지 모두 5차례 사형선고를 받아 18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그는 내내 ‘무기수’ 신분이었다.
부부자서전 <굽이치는 임진강>(1985년 삼민사), 저서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2008년 평화연대 평화연구소)가 있고, 맏딸 선주씨가 아버지의 삶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 <탐루-눈물을 찾다>(2005년 한울)을 내기도 했다.
말년까지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고문으로, ‘한반도평화통일시민단체협의회' 등에 참여해 평화통일운동에 앞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기씨와, 아들 선혁(고려대 교수), 딸 선주·선결씨, 며느리 최혜원(이화여대 교수)씨, 사위 박성운·나호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일산장례식장, 발인 31일 오전 9시 예정이다. (031)908-8611.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에큐메니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