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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세가지 가명으로 세사람 몫 투쟁…먼저간 동지들 반겨주겠지요”

등록 2020-07-13 22:12수정 2022-03-17 12:09

[가신이의 발자취] 안재구 선생을 추모하며
지난 7월9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고 안재구 선생 추도식에서 필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통일뉴스 제공
지난 7월9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고 안재구 선생 추도식에서 필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통일뉴스 제공

최덕출·김대성·남광민 이름으로
소년시절부터 환갑때까지 조직활동
4대 걸친 항일·민주·평화통일운동

1977년 7월 남민전 때부터 43년 ‘인연’
“지칠 줄 모르던 정열 저승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수학자이면서 열렬한 통일운동의 투사인 안재구 선생님! 정녕 이 한 많은 조국 산천과 정든 동지와 후배들을 남겨두고 떠나시렵니까. 죽음이란 우주의 섭리는 이미 선생님 곁을 두 번이나 스쳐간 사건인데, 이번에는 피할 수가 없었습니까.

그 첫 번째 죽음의 위기는 1950년 한국전쟁 때였습니다. 예비검속으로 삼엄했던 그해 7월, 선생님은 옴짝 못하게 걸려들었으나 천행으로 탈출, 각고의 피신으로 살아남았지요. 두 번째 죽음의 공포는 남민전 사건(1979)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무기로 감형됐습니다. 선생님은 1950년 7월의 공포를 “7월! 7월은 대학살의 달이었다”라고 울분을 토하셨는데, 바로 그 7월에 기어이 가시는군요. 오로지 민족해방 투쟁으로만 일관했던 고난의 87년, 선생님의 긴 인생 역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제가 남민전 활동으로 선생님을 처음 뵌 것도 1977년 7월이었는데, 7월에 헤어지니 이 지상에서 만 43년 동안 인연을 맺어 온 셈입니다.

수학자인 이학박사답지 않게 선생은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철학사에다 문학예술론까지 훤히 꿰어 낸 데다 세계혁명사를 통달했기에 뵈올 때마다 감탄이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그 시절 스승 격으로 모셨던 박현채 선생처럼 안 박사도 소년투사로서 일생을 투쟁으로 점철해 오신 쌍벽이어서 감동은 더했습니다. 둘은 다 건장하신 체격까지 닮았습니다. 그런데 박현채 선생의 소년 투쟁기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잘 녹아들어 있으나, 선생님의 체험은 제대로 기록하지 못 한 채 떠나셔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아쉬우나마 직접 정리한 저서 <끝나지 않은 길>(1·2권·내일을 여는 책)을 남기긴 했지만 여전히 걸쭉한 경상도판 대하소설로 승화되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선생의 집안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본인~아들에 이르는 4대가 항일·민주·평화통일운동으로 이어왔습니다. 할아버지는 1945년 4월, 화악산으로 입산, 청년들을 훈련시키다가 8·15 직후 하산해 건준에 참여, 민족전선 밀양지부 수석의장을 지냈습니다.

선생께서는 중학생 때 여학생 동무들도 함께했던 독서회가 소년시절 투쟁의 발판이었습니다. 그 회원 중 절친했던 박말수 선배의 맏형이 유명한 박석정으로, 투사 시인인 그는 월북했으며, 그의 부인 김정애 여사는 건준 밀양 부녀동맹 위원장을 지낸 이면사도 흥미롭습니다. 남북을 오가며 숱한 일화를 남겨 정체가 모호하기로 유명한 박진목에 대한 정보도 흥미진진합니다.

선생은 ‘10월 인민항쟁’ 때부터 독서회 회원들과 벽보투쟁과 가두연설에 참가했으며, 한민당 지지 교장 추방운동, 메이데이(노동자의 날) 투쟁, 민청 소년학생부 활동 등으로 퇴학당해 첫 유치장 체험을 하게 됩니다. 2·7 구국투쟁, 종남산 야산대, 남로당 밀양군당 조직레포(연락원), 농민위원회 오르그(활동가) 등을 지내느라 고등공민학교도 재대로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절에 선생님은 ‘최덕출’이란 조직명을 썼으니 이게 사실상 생애의 첫 가명이었고, 그 다음이 남민전 때의 ‘김대성’, 그 뒤 구국전위 조직사건(1994) 때의 ‘남광민’까지 합치면 일생동안 3가지 가명을 썼으니 세 사람 몫의 투쟁을 수행하신 셈입니다.

선생님의 그칠 줄 모르는 정열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제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시라는 입에 발린 인사는 드리지 않겠습니다. 저승에 가셔서도 계속 싸워 주십시오. 아직도 한반도의 평화와 민주주의의 정착은 요원합니다. 남겨둔 4남매가 선생님의 투지를 잘 이어갈 것이니 거기서도 지원해 주십시오. 특히 통일일꾼인 아들 영민과, <갑신년의 세 친구> <동주와 몽규>의 작가인 딸 소영은 매우 열심입니다.

그러니 저승에서는 투쟁에만 몰두하지 마시고 만나고 싶었던 그리운 선배 동지 후배와 가족들과 즐거운 회고담을 펼치시기를 빕니다. 먼저 가신 장수향 사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독서회 동무들, 인혁당 선후배, 미리 가신 이재문, 시인 김남주를 비롯한 남민전 동지들…, 모두 다 반가이 맞아줄 것입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임헌영 ㅣ 민족문제연구소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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