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무렵 조해일 작가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해서 살았던 옛 동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제자 박도준씨 제공
이 세상엔 아직도 울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으니, 너무 크게 웃지 말고, 행복을 뻐기지 말고, 성공을 자랑하지 말고, 슬쩍이라도 어두운 곳과 낮은 곳을 살피면서 살아.”
조해일 선생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지인과 제자들이 모여 이제 가고 없는 조해일 선생을 두고 뒷담화를 했다. 그의 흉을 보고, 우스웠던 일들과 고마웠던 일들과 섭섭했던 일들을 떠들었다. 덕분에 조금 울었고 덕분에 더 많이 웃었다. 사실 살아 있을 때의 술자리와 다를 바 없다. 그는 술자리의 주인이 공기(空氣)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고, 유쾌하고 편안한 공기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제물로 던질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치사함을, 파렴치함을, 잘못된 선택들과 부끄러웠던 과거들을 늘 안주처럼 꺼내놓았다. 우리는 그것으로 선생을 마구 놀렸고 선생은 허공에 팔을 저으며 웃었다.
사실 선생을 추모하는 이 글을 쓰다가 몇 번 집어던졌다. 어느 모로 보나 그 글은 진실하지 않다. 내 글이 맘에 안 드는 건지 선생의 삶이 맘에 안 드는 건지 모르겠다. 기왕에 죽었으니 뭐 잘 써주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우리가 몹시 사랑하는 선생이라고 그의 삶을 미화하는 건 웃긴 일이다.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 여전히 굴뚝 같지만, 성격상 하늘에서 그가 화를 낼 것이 뻔하다. 야 이 놈아, 내가 그렇게 멋있게 살았을 리가 없잖아.”하고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처럼, 조해일 선생도 루저였다. 30년 넘게 교수로 있으며 변변한 연구업적 하나 없었고, 소설도 쓰지 않았다. 교수 사회에서 정치력도 없었고 융통성은 더 없어서 교수가 되고 싶은 제자의 길을 열어주지도 못했다. 명색이 소설 전공 교수였는데 소설이라곤 일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가 황순원 선생의 제자일 때 배운 것처럼,‘선생은 그저 읽어줄 뿐, 가르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꿋꿋하게도 지켰다. 그저 빨간펜으로 꼼꼼히 교정을 본 제자의 소설을 돌려주고는 밥을 사주고 늦은 밤까지 같이 술을 마셔줬다. 생각해보니 선생은 술을 한잔도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 어떤 이는 10년을 어떤 이는 그보다 더 오래, 자신이 쓴 소설을 들고 선생의 방을 찾았다. 뭐 하루에 한편씩 쓸 수 있다면 선생에게 밥이랑 술은 얻어먹을 수 있으니 밥 굶을 일은 없을 수도 있겠다. 웃기게도 그 느리고 아무 보람도 없을 것 같은 교육 밑에서 꽤 많은 소설가들이 나왔다.
선생이 루저여서 제자들도 루저들만 모여들었는지, 제자들이 못난이들만 있어서 선생도 덩달아 루저가 됐는지 모르겠다. 영화판의 루저, 문학판의 루저, 연극판의 루저, 운동권 루저, 가난한 출판사 사장, 서른 넘고 마흔 다 되어도 정신 못 차리고 예술이랍시고 하고 자빠진 나 같은 못난 제자들이 선생을 찾았다. 이 못난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는 선생이라곤 조해일밖에 없으니까. 선생은 그 못난이들을 일일이 챙겼다. 아무 보람도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럽고, 소소하고 하찮은 만남들을 선생은 귀하게 대접해줬다. 그 생산성 없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제자들을 보듬어주고, 일일이 밥을 사주고, 술도 못 마시면서 술자리를 지키고, 용돈을 줬다. 너무 얻어먹은 게 많아 도저히 미안해서 제자가 술값이라도 내려 하면 “너 교수 연봉보다 많이 벌어? 까불지 말고 나보다 더 많이 벌면 그때 술값 내.”핀잔을 주곤 했다.
2015년 무렵 조해일(오른쪽 세째) 작가와 김언수(오른쪽 둘째) 작가 등 제자들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해서 살았던 선생의 집 근처를 함께 찾아가봤다. 사진 제자 박도준씨 제공
가난하고, 패배하고, 지고,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밀리고 치인 제자가 찾아와서 분노를 터트리면 선생은 같이 분노해줬다. 제자가 누군가를 욕하면 같이 신나게 욕을 하고, 제자가 자신의 부끄럼을 고백을 하면 자기 과거 속에서 더 치사한 것들을 꺼내 보여줬다.
그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고결함을 강요하지 않았다. 어떤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오건 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라고, 먹고 사는 일인데 섭섭하고 부끄러운 일이 왜 없겠냐고, 그럴 수 있다고 얼토당토 안 한 용기를 주곤 했다.
그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법을 말했다.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고, 실수하고, 상처주고 살아왔다고.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므로 내일은 조금만 덜 부끄럽게 살자고만 말했다. 우리에게 부끄러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치사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비겁함이 있다는 것을 늘 인정했다. 자신의 비겁함과 허약함을 인정하고 또 타인의 허약함과 비겁함을 인정했다. 그래서 결국엔 우리가 같은 물방울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내가 미워하고 부정하는 당신도 이 물방울 속에 같이 살며, 그토록 안간힘 쓰면서 이 아슬아슬한 물방울의 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가르쳤다.
그러니 조해일 선생이 떠났다고 기리고 빛낼 것은 별로 없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이제 선생도 없이 남겨진 이 많은 루저들에게 술은 누가 살 거냐는 것이다. 누가 그 술값을 내고 스스로를 허물어 술자리의 유쾌하고 편안한 공기가 될 거냐는 것이다.
김언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