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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기자-의사 이어준 ‘30년 홍보인’ 헌신의 삶 기억할게요”

등록 2020-05-24 19:18수정 2022-03-17 12:09

[가신이의 발자취] 임종필 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을 기리며
고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은 민감한 사회적 현안이 터질 때마다 병원을 대표해 언론 발표와 인터뷰를 도맡아 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고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은 민감한 사회적 현안이 터질 때마다 병원을 대표해 언론 발표와 인터뷰를 도맡아 했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항상 쑥스러운 듯 옅은 미소로 맞아주던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님. 이제 우리 곁에 없다니 실감이 나지 않네요. 1991년부터 홍보부에서 일을 시작해 2009년에는 제11대 한국병원홍보협회장도 맡았고, 지난 3일 56살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꼬박 30년 ‘서울대병원의 얼굴’로 헌신한 삶이었습니다.

제가 <한겨레>에 입사한 2001년께 맨처음 서울대병원을 찾아갔을 때부터이니 햇수로는 19년 동안 알고 지냈군요. 그때만해도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언론 취재를 무척 예민하게 생각하고 인터뷰를 거절할 때도 적지 않았지요. 그럴 때마다 열성을 다해 취재 섭외를 도와주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스스로 한 인터넷매체의 시민기자로 활동할 할 정도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작 병원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숱한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지요.

임 팀장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논문 조작과 관련된 취재 때였습니다. 황 전 교수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평소 3~4명 정도가 앉아 있던 기자실은 책상은 물론 복도 바닥에 앉아서 일을 하는 기자들로 꽉 들어차곤 했어요. 많을 때는 수백명이 대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기자들은 황 전 교수의 입원실을 다녀온 임 팀장님이 말씀하신 단어 하나, 예를 들면 “식사를 잘 했다”고 전해주면 그 말 한마디로 원고지 몇매의 기사를 써대곤 했지요. 거의 두세달 동안 밤 12시 이전엔 퇴근을 해 본 적이 없던 그때, 기자들과 함께 그 고통을 나누느라 누구보다 고생하던 기억도 잊히지 않습니다.

2005년 12월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lt;한겨레&gt;와 통화에서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줄기세포가 없다’고 밝힌 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황우석 교수의 병실 앞에 취재진과 병원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맨왼쪽 옆모습이 고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이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2005년 12월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한겨레>와 통화에서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줄기세포가 없다’고 밝힌 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황우석 교수의 병실 앞에 취재진과 병원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맨왼쪽 옆모습이 고 임종필 서울대병원 홍보팀장이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팀장 보직을 맡은 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습을 볼 때에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에도 다시 손을 대고, 기자들과 병원 보직 교수들 사이에서 고뇌하던 모습도 더 자주 보게 되었지요. 결국 몇 달 휴직을 하기도 했고, 그때 자택 근처에서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이젠 추억이 되어 버렸네요.

몇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그동안 취재로 혹시나 괴롭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부터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방사선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할 때는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요. 하지만 남아 있던 암 세포가 재발해 결국 항암제 치료에 들어갔다는 소식에는 또 다시 절망해야 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인 지난 4월 초 호흡곤란 증상마저 생겨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을 때 멀리 병실 유리창 너머로 봤던 모습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네요. 잠이 든 듯 누워있다가 어찌 알고 눈을 떠서는, 마치 ‘곧 나갈테니 술 한 잔 하자’는 손짓을 하는 듯 보였는데….

장례식장에는 참 많은 기자들이 찾아 고인의 삶을 뒤돌아 보면서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몇몇 선후배들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한참동안 달래야 할 정도로 애도를 했습니다. 생전에 늘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하기도 했는데, 빈소에서 만난 부인과 두 남매 모두 임 팀장님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임 팀장님, 그동안 참 많이 고생했습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는 편안한 저녁만 있는 삶을 누리길 빕니다.

김양중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전 <한겨레>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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