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궂긴소식

‘늘 다르게 보려고 했던 기자’ 기억하겠습니다

등록 2018-01-07 19:26수정 2018-01-07 21:09

[가신이의 발자취] ‘한겨레’ 정남기 형을 보내며
지난 4일 별세한 고 정남기 기자의 한겨레사우장이 6일 오전 서울 공덕동 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렸다. 노제에 나선 가족들이 고인이 2015년 11월 발병 전까지 일했던 <이코노미인사이트> 편집장석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있다. 사진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지난 4일 별세한 고 정남기 기자의 한겨레사우장이 6일 오전 서울 공덕동 본사 3층 청암홀에서 열렸다. 노제에 나선 가족들이 고인이 2015년 11월 발병 전까지 일했던 <이코노미인사이트> 편집장석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있다. 사진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고 정남기 기자는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 추모공원에 잠들었다. 부인 이숙희씨와 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고인의 묘비에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이정우 기자
고 정남기 기자는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 추모공원에 잠들었다. 부인 이숙희씨와 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고인의 묘비에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이정우 기자

지난 4일 57살의 길지 않은 생을 마친 고 정남기 형을 떠나보냈습니다. 남기 형을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직전이었습니다. 형은 병실을 찾은 이들에게 “이제껏 살고 보니 가장 남는 건 사람이더라. 누구보다 <한겨레> 식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늘 다르게 보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랐습니다.

남기 형은 2015년 11월 뜻밖의 암 진단을 받았지만 의욕적인 투병생활을 해왔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병마에 맞서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을 그리워했습니다. 2016년 11월께 입사 동기들과 대모산 자락에 올랐을 때 꿋꿋한 모습에 위문하려던 우리가 오히려 안도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날 오후 시내에서는 첫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청계광장의 촛불과 대모산에서 웃음짓던 남기 형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겨레’ 논설위원실에서는 지난해 연말 병상의 정남기 기자에게 논설위원 시절 대표 칼럼을 새긴 기념패를 전달했다.
‘한겨레’ 논설위원실에서는 지난해 연말 병상의 정남기 기자에게 논설위원 시절 대표 칼럼을 새긴 기념패를 전달했다.
돌이켜보면 ‘기자 정남기’는 <한겨레>가 항상 깨어 있도록 채찍질하는 죽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칼럼으로 꼽은 ‘소현세자와 죽음의 추노꾼들’에서, 소현세자는 주자학의 명분론에 집착하던 조선 조정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청나라에서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현세자처럼 <한겨레>가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롭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도록 분투했습니다. 편집국에서, 회사 앞 호프집에서 마주 앉아 논쟁도 종종 했습니다. 몇몇 글은 사내외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걸 떠나 함께 일하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기자 정남기’는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추구하는 담백한 언론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는 진영논리, 진보를 가장한 허위의식, 본질을 외면한 채 변죽만 울리는 일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글에는 항상 공부하고 노력한 흔적이 있습니다. 비판보다는 대안을 찾고,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합리적 저널리스트였습니다. 누구보다 보수 기득권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남기 형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후배들은 그를 깐깐하지만 속정 깊은 선배로 기억합니다. 데스킹 할 때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우 꼼꼼했습니다. 사실관계를 따질 때는 깐깐하기 이를 데 없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마음 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남기 형은 클래식부터 아이돌까지 모든 음악에 정통한 세련된 문화인이었습니다. 연세대 시절, 평화문제연구회 등을 통해 학생운동에 헌신해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대학 후배들은 그가 솔직하고 헌신적인 선배였다고 말합니다. 좋은 말로 꼬드기거나 에두르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상찬보다 더욱 값진 건 그가 마지막날까지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용기있게 투병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의 헌신적인 보살핌은 큰 힘이 됐습니다. ‘한겨레’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은 부인 이숙희님과 두 아들, 그리고 부모님 등 가족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 가장 큰 버팀목이었습니다.

지난 6일 한겨레사우장으로 진행된 고 정남기 기자의 영결식에서 대학 후배이자 ‘한겨레’ 입사동기인 백기철 논설위원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이정우 기자
지난 6일 한겨레사우장으로 진행된 고 정남기 기자의 영결식에서 대학 후배이자 ‘한겨레’ 입사동기인 백기철 논설위원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이정우 기자
남기 형은 떠나는 순간까지,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습니다. 비록 육신이 떠나더라도 형의 이름과 생각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남기 형,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한겨레>에 바친 28년 청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바친 57년 삶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 편히 영면하소서.

백기철 논설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인해전술·헬기·확성기…전현직 경찰이 꼽은 ‘윤석열 체포 꿀팁’ 1.

인해전술·헬기·확성기…전현직 경찰이 꼽은 ‘윤석열 체포 꿀팁’

유동규, 이재명에게 “왜 째려보냐”…재판장 “두 분 눈싸움 하시나” 2.

유동규, 이재명에게 “왜 째려보냐”…재판장 “두 분 눈싸움 하시나”

“사탄 쫓는 등불 같았다”...‘아미밤’ 들고 화장실로 시민 이끈 신부 3.

“사탄 쫓는 등불 같았다”...‘아미밤’ 들고 화장실로 시민 이끈 신부

‘관저 김건희 개 산책 사진’ 어디서 찍었나…“남산에서 보인다길래” 4.

‘관저 김건희 개 산책 사진’ 어디서 찍었나…“남산에서 보인다길래”

경찰청은 “2년 전 모두 폐기”…윤석열 직통 ‘조지호 비화폰’ 정체는? 5.

경찰청은 “2년 전 모두 폐기”…윤석열 직통 ‘조지호 비화폰’ 정체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