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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노동운동가 박승호 선배, 그 오랜 ‘전태일 정신’ 되새기며…”

등록 2022-12-11 20:27수정 2022-12-11 21:10

[가신이의 발자취]노동운동가 고 박승호 동지를 추모하며
지난 12월 7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박승호 동지 추모제’가 열렸다.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지난 12월 7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박승호 동지 추모제’가 열렸다.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우리는 경제력으로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 속에 각자도생하는 ‘헬조선 시대’를 살고 있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노동자이므로 헬조선을 변혁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개척하기 위해 평생 분투해 온 박승호 선배가 지난 5일, 64살로 홀연히 떠나버리니 황망하고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

1986년 안산에서 선배를 처음 만났다. 서울대 경제학 석사까지 마치고도 교수의 길을 접고 노동운동가의 삶을 선택한 것이 놀라웠다. 선배는 낯선 곳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는 나에게 따뜻하고 자상한 사수였다. ‘노동운동 이전에 노동자계급의 일원이 되라’는 말씀은 내가 평생 노동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가르침이 되었다. 서슬퍼런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기습적인 집회 시위를 이끌며 ‘실천의 모범’을 보인 것도 잊을 수 없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는 반월공단노동상담소장, 전국노운협 노조특위장, 민주노조운동연구소장을 맡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 확산을 위해 헌신했다. 이를 통해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의 건설과 강화, 한국통신 등 기간산업 노조의 민주화 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악법과 국가보안법으로 탄압을 받아 두번이나 구속되고 장기간의 수배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희생도 감수했다.

선배는 역사적 전환점마다 노동운동이 무엇이 부족한지 성찰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데도 앞장섰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전후로 국가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의 인간 파괴에 맞서는 대안으로 노동운동이 노동해방에서 나아가 인간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착취와 억압만이 아니라 물질화에서 해방될 때 존엄한 인간으로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금전대의 부피보다 인간의 가치를 우선하라’ 는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선배는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장을 맡고,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설립 추진에 참여하여 정치경제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노동운동가를 양성하였다.

고 박승호 후원회장의 생전 활동 사진 모음.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고 박승호 후원회장의 생전 활동 사진 모음.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선배는 늘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했다. 2004년엔 서울대에서 경제학박사를 받고 <자본론 함께 읽기> 저술로 마르크스이론의 심화에 기여한 연구자에게 주는 ‘유인호 학술상’도 받았다. 마르크스 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독보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한국사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사회 건설을 위한 다수의 저술 활동과 함께 여러 대학, 다수의 노조에서 왕성한 정치경제학 강의와 정세교육 활동을 하였다. 2016년 촛불혁명 이후에는 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를 결성하여 한국사회 변혁을 위한 ‘민주, 평등, 공공성의 새 민주공화국 정치사회적 제안’ 을 하였다. 그리고 비정규직 조직화 지원과 청년세대 교육을 통해 새로운 노동운동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5인 미만 사업장 조직화를 위한 권리찾기유니온 후원회장을 맡았고, 비정규직 노동자쉼터 꿀잠을 마련하는 데 학술상 상금을 기꺼이 쾌척했다. 췌장암 판정을 받아 투병하면서도 청년활동가와 좌담을 하고 새로운 노동자정치운동 모색에 함께 했다.

동시대를 살아온 노동운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요즘은 흔치 않은 희생적 삶을 살다 가신 선배의 영전에 감히 깊은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올린다. 공부와 실천을 결합한 치열하고 헌신적인 활동으로 남긴 노동운동과 연구의 큰 족적은 한국 노동운동 발전의 자산이 되고 후배 노동운동가, 연구자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조상수 철도노동자/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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