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0월 방한한 고 서대숙 박사가 <한겨레>와 마지막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김일성 연구를 비롯한 북한학의 선구자인 서대숙 박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1.
1931년 만주 룽징(용정)에서 서창희 목사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1950년 연희대(연세대) 정법대에 입학했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군 통역관으로 일했다. 1952년 미국 유학을 떠나 텍사스 기독교대 정치학과, 인디애나대 대학원을 거쳐 1964년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휴스턴대 교수 때인 1967년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한 <조선공산주의운동사>(프린스턴대 출판부)에 이어, 1970년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컬럼비아대 출판부)을 출간하면서 북한학 권위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특히 ‘김일성이 분명히 항일 무장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처음 논증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2부터 2004년까지 하와이대 교수로 재직한 그는 1974년 유엔대표부를 통해 북한 비자를 받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때 황장엽 김일성대 교수와 인연을 맺어 1997년 그가 남한 망명 직전 도쿄에 머물 때와 서울로 온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교유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서울대 초빙교수로 귀국해 주체사상 등에 대해 강의했고, 1999∼2000년 연세대 용재석좌교수, 2000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북한대학원장으로 일했다.
지난 2018년 10월 독립기념관에 항일독립운동 관련 자료 3700여점을 기증해 ‘서대숙 문고’를 만들었고, 한신대에도 북한 관련 자료 7천여점을 맡겨 ‘서대숙 통일역사문화자료실’이 생겼다. 그때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그는 “김일성 주석을 처음 만났을 때 비공개하기로 약속했으니 지키고 싶다”며 ‘김일성 면담 기록’은 사후공개로 남겨뒀다.
유족은 부인과 아들 모리스 서(변호사·전 엘에이 부시장)와 케빈 서(변호사) 등이 있다. 장례예배는 10월3일 엘에이 교외 웨스트레이크 빌리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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