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별세

23일 별세한 고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의 서울아산병원 빈소. 임정기념사업회 제공
망명한 대동단 총재 김가진 선생 손자
“이시영 할아버지·김구 아저씨 불러”
1946년 환국·미군 통역관·기자 활동
‘민족일보’ 때 사장 조용수 사형에 충격 ‘백범의 품 안에서 자란 임시정부의 아들’이자 ‘임시정부의 마지막 증언자’로 평생토록 헌신한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이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 고인은 1928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임정 본부가 있던 프랑스 조계 안의 한인촌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 선생은 대한제국 시절 김홍집내각에서 ‘홍범 14조’를 직접 기초한 개화파 관료이자 3·1운동 직후 비밀결사 조선독립대동단을 조직한 총재로서 일제의 감시를 받자 일흔넷의 고령으로 상하이로 망명해 임정의 고문을 지냈다. 아버지 성엄 김의한은 임정의 실무요원이자 김구 선생의 비서로 일했고, 어머니 수당 정정화는 임정의 살림부터 독립운동 자금 모금까지 헌신해 ‘임정의 잔 다르크’로 불리었다.

2013년 8월 <조국으로 가는 길> 특별전시회 때, 1928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김구(왼쪽) 선생이 김자동(아기) 회장을 안아주는 동안 모친 정정화(오른쪽)가 밥을 짓는 장면을 미니어처로 재현해놓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고인의 조부 동농 김가진, 1935년 중국 난징 시절의 선친 김의한·모친 정정화·7살 김자동 가족.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환국 이듬해인 1947년 찍은 첫 가족 사진이자 한국전쟁 때 납북된 부친과 함께한 유일한 사진이다. 왼쪽부터 모친 정정화, 보성중학교 5학년생 김자동, 부친 김의한. 임정기념사업회 제공
2004년 ‘임정기념사업회’ 창립 주도
지난해 ‘임정기념관’ 건립 결실 이뤄
‘동농 선생 유해 봉환과 서훈’ 미제로 김 회장은 2005년부터 15년 동안 매년 한 차례씩 '독립정신 답사단'을 이끌고 중국을 비롯한 독립운동 유적지를 직접 답사해왔다. 2006년에는 재북임시정부요인 후손 추석성묘단을 이끌고 분단 이후 최초로 평양의 재북인사 묘역을 참배했다. 이때 한국전쟁 와중에 납북됐던 부친의 묘비를 통해 1964년 10월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8년 <한겨레> 창간 주주로 참여해 한때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2010년 1월부터 <한겨레> ‘길을 찾아서’를 통해 ‘임정의 품 안에서’ 회고록을 연재했다. 그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2008년 5월 ‘대한민국 건국 60년 기념사업회’를 출범시키자 “3·1운동과 임정의 법통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30년이나 지워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개탄하며 ‘임정의 산증인’으로 나섰다. “국사 과목마저 없어질 지경으로 역사교육이 날로 소홀해지고 심지어 왜곡되고 있어 임정을 비롯한 선열들의 항일투쟁사와 민족의식을 보고 들은 대로나마 남겨둘 의무를 느끼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28년간의 역사를 증언한 연재 내용을 바탕으로, 2012년 <상하이 일기>(두꺼비), 2014년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푸른역사)를 펴낸 데 이어 2018년에는 임정기념사업회 15년 활동까지 담아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푸른역사)를 출간했다. “임시정부는 내 삶의 뿌리였고, 살아가는 길의 좌표였다. 이 책은 내 안에 남은 임시정부의 기록이다.”

고 김자동(왼쪽) 회장은 부인 김숙정(오른쪽)씨과 함께 2006년 추석 때 평양 용궁동 재북인사 묘역을 방문해 부친 김의한 선생에게 46년 만에 참배를 했다. 1991년 작고한 모친 정정화 선생은 사진으로 함께했다. 임정기념사업회 제공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자동(앞줄 오른쪽 둘째) 회장 등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충칭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함께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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