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2주 전인 지난 6월 하순 서울 인사동 목요고서의 경매를 참관한 고 이상희 선생. 목요고서 제공
서울에 비가 기록적으로 퍼붓던 지난 8 일 , 어른 같은 어른 , 이상희 한국애서가클럽 명예회장 께서 영면에 드셨다. 향년 90 . 1932 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으로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시고 , 1961 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진주 시장·산림청장·대구 시장·경북 도지사·내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등 30 년을 행정관료로 봉직하셨다. 특히 1990년대초반 건설부 장관 시절 분당· 일산 신도시 개발과 자유로 건설 등을 밀어부친 추진력은 지금도 회자된다 .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고인은 청렴하고 고고한 품위를 지닌 선비와 같은 분이시다. 처음 뵌 것은 19 90 년대 중반 서울 답십리 어디쯤의 고서점이었던 것 같다 . 작은 체구에 수수한 차림으로 자료를 이리저리 검토하시던 진지한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 이후 알게 됐지만, 고인께서는 고대와 근대를 가리지 않는 대단한 수집가이셨다. 특별히 꽃과 매화 등 식물 관련 , 술과 여흥문화 , 지방행정 , 만주 간도 관련 자료의 수집에 진심이셨다 . 물론 자신의 수집 주제에 관련한 식견도 탁월하셨다 .
고인은 1998 년 10 만여 권의 책을 소장한 장서가로 1998년 한국애서가클럽에서 주는 ‘제7회 올해의 애서가 상 ’ 을 받았다. 건설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부동산 투기’를 경계하며 30년 넘게 서울 성산동 주택에 살았던 선생은 약 60평(198m²) 규모 2층 양옥과 반지하 서재에 10만~11만권의 다양한 분야의 책을 구비해 국내 최고의 장서가로 꼽혔다.
고 이상희(왼쪽부터 셋째) 명예회장이 2017년 애서가클럽 영화 자료전에서 안병인(왼쪽부터 넷째) 회장 등 회원들과 함께했다. 애서가클럽 제공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들고 보기도 힘든 방대한 분량의 <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 < 술 , 한국의 술문화 > 등 10여권을 펴내 저술가로도 이름을 얻었다 . 술과 꽃과 관련된 자료의 집대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저서들은 품절된 상태여서 중고시장에서 훨씬 비싸게 팔리는 희귀본이 되었다 . 선생은 말년에 대구 두류도서관에 장서의 일부인 7 만 여권의 책을, 고향인 성주군에 3500 여 점의 매화 관련 자료를 기증하기도 했다.
선생은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고서경매장에 가면 늘 만날 수 있었다 . 선생이 맨 앞줄에 앉아 출품된 자료에 관심을 보이시면 다른 수집가들의 사이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 선생과 경쟁해서 살 수는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 해서 선생에게 필요한 자료가 나오면 묵시적으로 입찰을 자제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 실제로 선생은 돌아가시기 2 주 전까지도 병원 환자복에 겉옷만 걸치신 채로 인사동의 경매장을 찾을 정도로 못말리는 열정의 수집광이셨기 때문이다 .
선생은 오랫동안 한국애서가클럽 명예회장을 맡아 , 후배들에게 늘 수집과 관련된 조언과 지도를 아끼지 않으셨다 . 월례 정기 모임이나 연례 답사 , 전시 때도 거의 빠지지 않으셨다 . 수년 전 선생을 모시고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 하필 한글날 연휴 등과 겹쳐 오전 8 시쯤 출발해서 오후 2 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 장시간 여정에 불편하실 텐데도 오히려 일행을 챙겨주시고, 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내내 매화 이야기를 해주시던 그 열정, 아직도 눈에 선하다 .
내년 매화 필 무렵에는 회원들이 소장한 매화 자료를 모아 고 이상희 명예회장님을 기리는 ‘ 매화 자료전 ’ 을 열어도 좋겠다 .
안병인/한국애서가클럽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