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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궂긴소식

‘아빠의 청춘’ 1960년대 국민 가수 오기택 별세

등록 2022-03-24 00:03수정 2022-03-24 00:28

‘영등포의 밤’ ‘남산 블루스’ ‘고향 무정’ 등
올초 전재산 고향 해남고 장학금으로 유증
지난 2018년 10월 고향 해남에 세워진 자신의 노래비 제막식에 휠체어를 탄 채 참석한 고 오기택 원로가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지난 2018년 10월 고향 해남에 세워진 자신의 노래비 제막식에 휠체어를 탄 채 참석한 고 오기택 원로가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아빠의 청춘’ 등 매력적인 저음으로 1960년대 국민가수로 사랑받은 오기택이 23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3.

전남 해남 출신인 고인은 고등학교 때 상경해 성동공고 기계과를 졸업한 뒤 동화예술학원 재학 중이던 1961년 12월 ‘제1회 KBS 직장인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인 1962년 메이저 음반사인 신세기의 전속 가수로 정식 데뷔한 그는 1963년 4월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복무 중에도 음반을 계속 냈다. 특히 서민의 애환을 담은 ‘영등포의 밤’이 큰 인기를 얻어, 66년에는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왔다. 그는 제대 뒤 ‘고향 무정’, ‘아빠의 청춘’, ‘남산 블루스’, ‘충청도 아줌마’, ‘비 내리는 판문점’ 등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1962년 발매한 고 오기택 가수의 첫번째 음반 ‘영등포의 밤’. 신세기 레코드사 제공
1962년 발매한 고 오기택 가수의 첫번째 음반 ‘영등포의 밤’. 신세기 레코드사 제공

고인은 1979년 한국연예협회(현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가수분과위원장을 맡았고, 골프 실력도 뛰어나 1981년부터 3년간 전국체전 전남 대표로 활동해 단체 금메달과 개인 1위 등 3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고향인 해남에서는 2007년부터 해마다 ‘오기택 가요제'가 열리고 있고, 2018년에는 ‘오기택 노래비’도 만들어졌다. 2010년에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영등포의 밤’을 기리는 노래비를 세웠다.

지난 1997년 사고로 다친 그는 20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해오면서도 무대의 꿈을 잊지 않았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고인은 지난 1월 사후 전 재산을 전남 해남고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로 유증했다. 

빈소는 26일께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김경애 기자, 연합뉴스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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