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나눔 중독자’로 부르며 20년 넘게 봉사 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농업인 전권섭(왼쪽)씨와 미용실 원장 배경옥(오른쪽)씨 부부. 사진 전권섭씨 제공
“우리 집사람이 ‘당신은 12월만 되면 남한테 퍼주는 재미에 화색이 돈다’고 놀려요. 그러는 집사람도 직업병으로 팔목 수술까지 하고도 미용봉사 활동은 쉬지를 않아요.”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에 사는 전권섭(60)·배경옥(62)씨 부부는 서로를 ‘못말리는 나눔 중독자’라고 부른다. 결혼 40년째인 부부는 24년째 직접 농사 지은 쌀 100가마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해왔다.
“4대째 한 자리에서 살아온 농사꾼 집안인데 내내 소작만 해서 어릴 땐 밥도 굶어봤지요. 그래서인지 가마솥에 둘러앉아 온동네 나눠 먹던 추억이 좋았어요. 아버지 54살 때 늦둥이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께서 18살 때 세상을 뜨시고 아버지는 연로하시니 20살에 이웃마을 처자를 소개받아 서둘러 결혼해서 가계를 떠맡아야 했죠. 다행히 미용사인 마누라 덕분에 알뜰살뜰 모아서 1996년 내 이름으로 처음 2천평의 논을 장만할 수 있었어요. 그 이전부터 대출이라도 받아 내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보증인을 구하기 어려워 번번히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어요. 그래서 그때 이 논에서 거둔 소출은 모두 이웃에게 나누기로 ‘합의’를 했지요.”
전권섭씨는 1997년부터 24년째 해마다 지접 농사지은 쌀 100가마를 지역사회에 기부하고 있다. 사진 광주광역시남구자원봉사센터 제공
지금은 임대한 논 3만여평도 친환경 농법으로 짓고 있는 영농후계자인 전씨는 지금껏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왔다.
“처음엔 쌀만 보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반찬거리도 마땅히 없는 가정이 태반이었죠. 그래서 2007년부터는 배추며 고추며 밭농사도 지어서 김장김치를 함께 나눠주게 됐지요. 입소문이 나니까 친구들이나 지인들도 조건없이 논을 맡겨주고, 김장 때는 젓갈이며 마늘이며 양념을 보내주는 숨은 후원자들도 많아졌어요. 그러니 이제 내 맘대로 그만 할 수도 없게 됐네요.ㅎㅎ”
지난 4일 전권섭(오른쪽 여섯째)씨가 캠프지기를 맡고 있는 광주시 남구 ‘송암동자원봉사캠프’ 회원들이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 봉사 활동을 했다. 사진 광주광역시남구자원봉사센터 제공
전씨는 2012년 남구청에서 주는 ‘사회봉사 부문’ 남구민상을 받았고, 2017년부터 2년간 남구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지역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보살폈다. 2018년에도 한 언론사에서 주최한 ‘100인의 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20여년 조용히 활동해 온 부부는 이제 이웃들과 함께 더 많은 나눔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부터는 남구자원봉사센터의 송암동 자원봉사 캠프지기로 회원들과 함께 다양한 이웃돕기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추석에도 송편을 직접 만들어 외로운 이웃들에 전달했다. 지난 4일에도 3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김장김치 1000포기를 담아 쌀과 함께 기부했다.
전권섭씨는 쌀과 함께 겨울나기에 필수품인 김장김치도 후원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4일 송암동봉사캠프 회원들과 함께 1000포기의 김치를 준비했다. 사진 광주광역시남구자원봉사센터 제공
전권섭(왼쪽)씨는 나눔 활동이 알려지면서 도와주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 때는 서울에 사는 신동선씨가 마스크 1천장(상자)을 후원해줬다. 사진 광주
“쌀과 김치는 전량 지자체를 통해서 필요한 가정에 전달해왔어요. 받는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이름이나 얼굴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서요. 그래도 오래 하다보니 알음알음 알려졌는지 ‘감사의 편지’를 보내줘 보람을 실감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전씨가 이처럼 오랜 세월 지치지 않고 나눔 실천을 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부인과 2남2녀 가족들의 든든한 지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광주 화정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부인 배씨는 광주시서구미용협회 회원들과 ‘사랑나눔 가위소리’ 봉사회를 꾸려 매달 한차례씩 장애인과 어르신들에게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농협에 근무하는 큰아들은 대를 이어 ‘쌀 100가마 기부’를 하기로 약속했다.
미용실 원장인 부인 배경옥씨는 10년 넘게 지역사회의 장애인과 어르신들을 위해 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서구미용협회 제공
30여년 전부터 묘지 조성이나 이장 작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조경수 재배도 해온 전씨는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많이 보다보니, 생전에 아무리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렸어도 결국은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건 마찬가지더군요. 욕심 버리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게 최고의 행복이고 진짜 부자 아니겠어요?”
부부는 ‘나눔도 중독이어서 멈출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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