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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하다 투사로 운동가로 진화한 ‘40년 기록’ 남겨야죠”

등록 2018-12-05 21:13수정 2018-12-05 21:27

[짬] 광주 민주여성단체 송백회
오월민주여성회와 광주여성재단은 지난 1일 ‘송백회 40주년 기념 학술 심포니엄’을 열었다. 오월민주여성회 제공
오월민주여성회와 광주여성재단은 지난 1일 ‘송백회 40주년 기념 학술 심포니엄’을 열었다. 오월민주여성회 제공

“털실로 양말을 떠서 감옥에 있는 구속자들에게 보내는 일부터 시작했지요.”

올해로 창립 40돌을 맞은 송백회의 전 간사 임영희(62·전 민주공제회 이사)씨는 4일 “양심수를 위한 옥바라지 활동이 양심수 돕기 운동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송백회는 1978년 11월 초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 소심당에서 결성됐다. 구속자 부인 20여 명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의 후원단체로 출발했지만, 진보적 여성 40여 명이 참여하면서 사회단체로 진화했다. 송백회란 이름은 ‘직녀에게’로 잘 알려진 고 문병란 시인이 지어준 것이다. ‘소나무처럼 푸르고 잣나무처럼 곧게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78년 구속자 부인 20여명 첫 결성
이듬해 진보여성 40여명 가세해 출범
80년 5·18때 홍보·모금·취사 한몫
“털실양말 뜨던 손으로 화염병 제작”
회원 6명 구속되거나 지명수배 ‘고초’

최근 창립 40돌 기념 학술 심포지엄
구술 채록해 내년 사료집 발간하기로

1979년 독재정권에 항거하다가 구속된 양심수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예술인들의 기증을 받아 송백회 이름 새겨서 판매했던 도자기. 오월민주여성회 제공
1979년 독재정권에 항거하다가 구속된 양심수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예술인들의 기증을 받아 송백회 이름 새겨서 판매했던 도자기. 오월민주여성회 제공
초기 송백회 회원중엔 홀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구속된 남편 옥바라지하는 부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채소 장사, 꿀 판매, 월부책 장사, 품팔이 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회비나 후원금으로 기금을 모으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도자기 전시회였다. 그시절 광주에서 살던 소설가 황석영의 주선으로 전국의 화가와 시인들이 기꺼이 도와준 덕분이었다. 화가 여운은 그림을 그려 넣어 구운 도자기 수십점을 기증하고 시인 김지하는 ‘란’ 그림, 화가 국중효도 작품을 내놓았다. 이윤정(63) 오월민주여성회장은 “송백회 글씨가 새겨진 도자기 50점과 유화 5점을 판매해 기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송백회는 1년여 만에 점차 민주여성단체로 진화했다. 20여 명의 구속자 부인들과 더불어 교사·의사 등 전문직 여성 40여 명이 가세해 회원이 60여 명으로 늘어났다. 서울 출신이지만 당시 남편 황석영과 함께 광주로 옮겨와 정착한 소설가 홍희윤(74·필명 홍희담)씨가 2대 회장을 맡았고,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총무,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장이 서기, 임영희씨가 간사를 맡았다.

송백회는 여성문제를 비롯, 역사·사회 관련 독서 소모임을 꾸렸다. 임 전 간사는 “1979년 송백회에서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의 사회문제부 노동분과(이윤정)와 농촌문제부(정유아)로 회원 2명을 파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1979년 5월 송백회 창립 첫돌을 기념해 화순의 송석정으로 야유회를 갔다. 뒷줄 맨왼쪽 홍희윤, 네째 김경천, 다섯째 나혜영씨 등이다. <한겨레> 자료 사진
1979년 5월 송백회 창립 첫돌을 기념해 화순의 송석정으로 야유회를 갔다. 뒷줄 맨왼쪽 홍희윤, 네째 김경천, 다섯째 나혜영씨 등이다. <한겨레> 자료 사진
그러다가 1980년 5월을 맞았다. 송백회는 들불야학, 극단 광대, 현대문화연구소, 양서협동조합 등과 함께 5·18항쟁 때 조직적으로 투쟁했던 그룹 중의 하나다. 송백회 회원 6명이 구속되거나 지명수배를 받았다. 회원들은 김상윤씨가 운영하던 녹두서점에 모여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여성 회원들도 남성들과 함께 화염병을 만들어, 광주문화방송국 앞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정현애 관장은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한 분노가 극에 이를 때였다. 돌멩이 집어 들듯이 너도나도 방송국에 화염병을 던졌다”고 회고했다.

송백회는 5·18 때 홍보와 모금, 취사 등을 주로 맡았다. 회원들이 모아둔 기금이 이때 요긴하게 쓰였다. 검은 리본 제작, 희생자 염에 필요한 솜과 마련, 성명서와 펼침막 제작도 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과 여성 노동자들이 시민군을 위해 밥을 짓는 취사반에도 회원들이 적극 참여했다. 이윤정 회장은 “항쟁 마지막 날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에 모여있던 여성들은 ‘끝까지 죽음으로써 광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5·18 이후 진실 알리는 일에도 적극 나섰다. 임 전 간사와 회원 김은경씨는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낭독했던 성명서를 문화활동가 김선출·전용호 등과 서울에서 녹음해 테이프를 기독교협의회 이름으로 전국에 배포했다. 1982년 4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든 ‘넋풀이’ 테이프는 회원 홍희윤의 집에서 은밀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지난 12월 1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열린 ‘송백회 40주년 기념 학술 심포니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오월민주여성회 제공
지난 12월 1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열린 ‘송백회 40주년 기념 학술 심포니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오월민주여성회 제공
송백회의 활동을 역사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하긴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오월민주여성회와 광주여성재단은 지난 1일 ‘송백회 40주년 기념 학술 심포니엄’을 열었다. 송백회와 광주항쟁의 연대 등을 주제로 박사학위(2012) 논문을 썼던 이윤정 회장은 ‘광주민중항쟁과 송백회 여성 활동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이 회장은 “회원들이 오랜만에 만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은 송백회 회원들의 구술 채록 작업을 시작해 내년 7월께 ‘송백회 40주년 사료집’을 낼 예정이다. 사료집 발간위원회 회장을 맡은 홍희윤 작가는 “송백회는 해방 이후 첫 자주적인 여성단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역사 기록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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