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캐나다 출신 ‘북한 지원’ 국제활동가 에릭 와인가트너
“판타스틱! 판타스틱 체인지!” 40년 가까이 북한 인도적 지원을 해온 국제활동가 에릭 와인가트너 전 세계교회협의회 북한 책임자는 최근 진행중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두고 “행복한 변화”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최근인 3년 전 북한을 다녀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북의 핵개발 이후 남북, 북미 관계의 신뢰가 깨져 대화 재개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2015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북측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의 만남을 주선해 평양을 방문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 시대를 모두 경험했는데, 최근들어 적어도 평양에서는, ‘장마당’ 같은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긍정적인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어요.”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이사장 김흥수)이 29일~11월2일 주최하는 ‘한반도 역사 화해와 상생을 위한 2018 세계평화대회’에 초청받아 3년만에 방한한 그를 29일 개막행사장인 인천 하버파크호텔에서 만났다.
80년대 세계교회협의회 북한 책임자
97~99년 비정부기구 첫 평양 연락관
2015년 남북 개신교 대표단 만남 주선
“적어도 평양에선 긍정적 변화 기운” YMCA전국연맹 ‘세계평화대회’ 참가
“민간분야 다층적 지속적 대화 정착을”
캐나다 출신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그와 한반도의 특별한 인연은 40년 전인 1978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근무 때부터 시작됐다. “79년 6월 카터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을 비롯한 개신교 진보진영에서 작성한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보고서와 양심수 100명의 명단’을 입수해 미국쪽에 전달하는 ‘극비 프로젝트’를 성사시켰어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일이죠.”
이후 박경서 세계교회협의회 아시아담당 국장, 오재식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도시산업선교국장 등과 긴밀한 교류를 한 그는 85년 한국 교회의 요청을 받아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한 개신교 대표단의 첫 만남을 비롯해 5년 동안 4차례 국제회의에서 남북을 연결시켰다. 지난 95년 북한이 국제사회를 향해 처음으로 원조를 요청하자 그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원조연락소(FALU) 대표로 평양에 파견됐다.
“97년 5월부터 99년 10월까지 2년 6개월간 평양에서 가족과 함께 근무했어요. 일부 한국 언론에 ‘최초의 외국인 평양 시민권자’로 잘못 소개되기도 했던데, 정확하게는 외교관이나 사업가가 아닌 비정부기구 대표로서 ‘워킹 퍼밋’(3개월짜리 노동허가서)을 처음으로 받은 것이에요.”
그는 그때 북쪽에서 모든 소통을 반드시 통역을 통해서만 하도록 통제하고 우리말 강습도 방해하는 바람에 한국말을 배우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면서도 “남이나 북이나 사람들의 문화적 정서적 태도는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훨씬 많다”고 했다.
귀국한 뒤 북한 외교부 부부상(최수헌)의 요청으로 캐나다 의회 대표단을 이끌고 재방북한 그는 2001년 북-캐나다 수교를 이끌어냈고, 두 나라 관련 뉴스레터 겸 웹사이트인 ‘캔코’(Cankor)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2013년 은퇴한 그는 2015년 세계교회협의회의 ‘한반도 에큐메니컬 포럼’(한반도포럼) 운영위원회 자문 자격으로 박경서 초대 대한민국 인권대사 등 12명과 함께 평양을 다녀오는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6·12 북미 정상회담’ 등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 이유에 대해 그는 “중산층의 등장에 따른 경제적 안정과 핵개발 성공에 따른 자신감”이라고 진단했다. “평양의 대형 쇼핑몰에 수입품이 가득하고 달러 거래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정도로 시장경제가 활발해지고 있어요. 2주 전 캐나다 여성단체가 주최한 ‘평화회의’에 젊은 남녀 북한 외교관들이 참가했는데 매우 유연하고 개방적이었어요. 예전같은 체제선전 발언이나 경제 지원 요청도 전혀 하지 않았고, 회의 주제에만 진지하게 몰두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만큼 그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교황 초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장 ‘배달’ 장면은 정말 판타스틱했어요. 그처럼 남북이 지속적인 교류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중요해요. 특히 문화·스포츠·종교 등 비정부기구를 비롯한 민간분야의 다층적인 ‘관계맺기’를 꾸준히 진행해 정착시켜야 해요.” 그는 세계와이엠시에이연맹의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세계평화대회의 금강산 개최 등 앞으로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 교류의 전령으로 기꺼이 조력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31일 세계평화대회의 국제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하는 ‘동아시아 한반도 평화체계 구축을 위한 민간의 역할과 협력방안’에서도 “평화도 정의도 모두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심고 뿌리내려야 할 필요가 있는 생명체”라며 “이원론적 양극단의 대립을 넘어, ‘샬롬’(온전함)의 지혜로 정의로운 평화를 이뤄낼 것”을 제안했다.
2018 세계평화대회는 ‘분쟁을 넘어 평화로', ‘평화는 공동의 미래'를 주제로 인천, 강원도 철원, 서울을 오가며 4박5일간 심포지엄, 워크숍, 비무장지대 순례, 문화공연 등 다양한 행사로 진행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동티모르,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등의 비정부기구 대표들과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민간 프로세스 추진을 위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평화 활동가까지 16개 나라 21명이 참여한다. 특히 31일 오후에는 강원도 철원 노동당사에서 한국전쟁 희생자 추모제를 올린 뒤 소이산까지 명상순례도 할 예정이다. 대회 기간 내내 서울 광화군 북편 광장에서는 설치미술전 등 ‘세계시민평화문화축제’가 열리며, 마지막 날인 11월 1일 오후 2시 기자회견에 이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 행진’으로 마무리한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10월 29일 세계평화대회 개막행사장인 인천 하버파크호텔에서 만난 에릭 와인가트너는 1985년 남쪽 개신교계의 요청으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최초로 북한 파견자 2명을 선발할 때 기꺼이 자원했다고 말했다. 김경애 기자
97~99년 비정부기구 첫 평양 연락관
2015년 남북 개신교 대표단 만남 주선
“적어도 평양에선 긍정적 변화 기운” YMCA전국연맹 ‘세계평화대회’ 참가
“민간분야 다층적 지속적 대화 정착을”
에릭 와인가트너는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일하던 1978년부터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등 개신교 진보진영과 손잡고 남한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에도 협력했다. 왼쪽부터 남부원 아시아태평양YMCA연맹 사무총장, 와인 가트너, 78년 기독학생회총연맹 간사로 인연을 맺은 안재웅 한국YMCA전국연맹 유지재단 이사장. 김경애 기자
‘2018 세계평화대회'가 열리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전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이어진다. 세계평화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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