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통일동산’ 묘역조성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국주(사진 오른쪽) 6월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과 추진위원 서우영(왼쪽) 6·15남측위원회 기획위원장을 만나 추진 과정을 들어봤다.
“모란통일동산은 ‘문익환·정경모·유원호-통일의 씨앗 3인’의 공적을 함께 기리며 ‘4·2 남북공동성명’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지난해 정경모 선생 유해 봉안을 시작으로 지난 4월 묘비 제막에 이어 이번에 4·2선언 상징 조형물인 추모벽까지 세우면 세 분 묘역 조성이 마무리됩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추모사업이 민간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이뤄져 뜻이 더 깊습니다.”
오는 11일 오전 11시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모란통일동산’ 제막식이 열린다. 지난주 막바지 작업 중인 묘역조성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국주(사진 오른쪽) 6월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과 추진위원 서우영(왼쪽) 6·15남측위원회 기획위원장을 만나 추진 과정을 들어봤다.
“지난해 2월 일본에서 돌아가신 고 정경모 선생 유해를 두달 뒤 모란공원에 봉안하면서 논의가 시작됐어요. 아시다시피, 세 분은 1989년 3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간 차원 한반도 통일방안 합의서인 ‘4·2공동성명’을 발표했죠. 그러나 국가보안법 사슬에 묶여 문익환·유원호 선생은 옥고를 치른 뒤 1994년과 2019년 각각 별세했고, 재일 언론인 정경모 선생은 끝내 귀국하지 못한 채 요코하마에서 눈을 감았어요. 올 4월엔 모란공원 안에 제각각 묻힌 세 분의 묘를 한자리에 모으고, 정 선생 1주기를 기려 추모비도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묘역 뒷편 둔덕의 토사가 흘러내리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걸 보고 자연스럽게 둔덕에 추모벽을 세우고 전체 묘역을 모란통일동산으로 꾸미기로 뜻을 모았죠.”
마침 ‘정경모 선생 추모비 건립 1만원 모금운동’으로 마련한 기금이 목표액을 초과한 덕에 ‘종잣돈’을 삼기로 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이사장 이부영)이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이사장 장영달)와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송경용)와 함께 지난해 10월부터 3월말까지 한 모금에는 국내 240여명과 일본 20여명 등 시민과 단체에서 참여해 1500만원 정도가 모였다.
“6·15남북정상 공동성명 22돌 기념일에 즈음해 묘역을 완공하기로 하고, 총 예산 6천만원을 목표로 성금 모금에 나섰어요. 5월 말 현재 모두 5100만원이 확보되었죠. 특히 1980년대말 늦봄 문익환 목사와 더불어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전대협 동우회와 김근태 의장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계승한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동지회에서 적극 나서 500여 명이 참여해줬습니다. 1천만원을 쾌척한 익명의 독지가도 있죠.”
서 추진위원은 경희대 84학번으로 1980년대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초기부터 문익환 목사와 인연을 맺어왔다. “1994년 1월 늦봄의 장례식을 총괄진행했는데 이번에 묘역 조성까지 마무리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더 각별하다”는 그는 ”장례식 때 대형 걸개그림을 디자인했던 민족미술협의회 노동미술창작단 능선의 박영균 작가가 이번 추모벽 제작도 맡았다”고 소개했다.
가로 16m, 높이 1.5~2.5m 크기의 추모벽은 ‘최대한 소박하게’를 주제로, 김형수 시인의 추모시와 성금 기부자 명단을 새겼다.
문국주 추진위원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73학번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구속당한 이래 지금껏 현장을 지켜온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다. “1987년 대선 패배의 충격을 딛고 1988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출범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대회’를 추진할 때부터 늦봄과 함께 활동했다”는 그는 “모란통일동산이 지금처럼 남북 교류가 막혀 있을 때마다 ‘한반도 통일의 꿈’을 되살리는 원천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11일 오전 9시30분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앞에서 마석 모란공원행 전세버스를 운행한다. 또 건강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경모 선생 유족들의 고국 방문을 돕기 위해 목표액까지 성금을 계속 모으기로 했다. (우리은행 1005-803-151831 (사)6월항쟁계승사업회)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