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엔지오

“110여년 ‘왜색 누명’ 우리꽃 왕벚나무 제대로 사랑해야죠”

등록 2022-03-31 20:36수정 2022-04-01 02:30

[짬] ‘나무 박사’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

왕벚프로젝트2050 초대 회장을 맡은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이 지난 3월 ‘한국의 재발견 식물탐사대’ 창립 10돌 기념 첫 사진전에 출품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9년 5월 밀양 얼을골 인근에서 찍은 인가목조팝나무의 꽃이다. 김경애 기자
왕벚프로젝트2050 초대 회장을 맡은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이 지난 3월 ‘한국의 재발견 식물탐사대’ 창립 10돌 기념 첫 사진전에 출품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9년 5월 밀양 얼을골 인근에서 찍은 인가목조팝나무의 꽃이다. 김경애 기자

“지난 100여년 벚꽃에 쌓인 역사의 먼지를 우리꽃 왕벚꽃으로 털어내고자 합니다.”

지난 2월 출범한 왕벚프로젝트2050의 회장 신준환(66) 전 국립수목원장은 31일 창립 선언문에서 밝힌대로 ‘벚꽃 해방’을 위한 첫걸음을 새달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왕벚프로젝트는 오는 4일 서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여의서로(윤중로)를 비롯한 국회 안팎과 여의도 일대에서 9개팀을 구성해 왕벚나무 생태조사에 나선다.

“벚나무는 일제의 상징화처럼 알려져 해방 이후 대대적으로 제거됐다가 1960년대 한·일 수교 재개 이후 재일동포나 일본 기업들의 기증을 통해 다시 대대적으로 퍼졌어요. 그래서 일본 원산의 ‘소메이요시노’ 벚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번식·증식해 2050년까지 전국적으로 바꿔나가는 캠페인을 펼치고자 뜻을 같이하는 생태학자와 원예전문가, 독림가, 언론인 등 111명이 먼저 나서게 됐어요.”

현재 사단법인 등록을 추진중인 왕벚프로젝트는 연차적으로 여의도와 진해를 비롯해 경주, 구례, 군산, 부산, 영암, 제주, 하동 등의 벚꽃 명소와 현충원, 왕릉, 유적지 등에 심겨진 벚나무 수종을 조사해 계속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왕벚프로젝트2050’ 초대회장 맡아
생태학자·원예전문가·언론인 등 111명
“한국 자생종 왕벚나무 전국 보급 캠페인”
4일 여의도 국회 안팎 벚나무 첫 생태조사

해방 계기 잘렸다가 60년대 다시 들여와
“일본 잡종과 다른 한라산 왕벚 심어야”

왕벚프로젝트2050는 지난 2월 18일 신구대 식물원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부회장에 김창렬 전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박노정 온누리식물원 대표, 사무총장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대표, 이사에는 김용하 충남대 교수·이숭겸 신구대 총장·이영주 영주농장 대표·류순열 UPI뉴스 편집국장, 감사에는 문광신 변호사·임항 식물탐사대 대장이 선임됐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제공
왕벚프로젝트2050는 지난 2월 18일 신구대 식물원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부회장에 김창렬 전 한국자생식물원 원장·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박노정 온누리식물원 대표, 사무총장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대표, 이사에는 김용하 충남대 교수·이숭겸 신구대 총장·이영주 영주농장 대표·류순열 UPI뉴스 편집국장, 감사에는 문광신 변호사·임항 식물탐사대 대장이 선임됐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제공

“여의도 일대의 벚나무들 역시 일본 수종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근거를 남기고 널리 알리고자 해요. ‘윤중로’ 명칭도 일본식이어서 여의서로 또는 여의방죽로로 썼으면 해요.”

서울시 기록을 보면, 서강대교 남단에서 국회의사당 뒤편을 돌아 여의2교 북단까지 이어지는 1.7km를 비롯해 여의도를 둘러싼 제방 7.0km에는 1968년 30~35년생 왕벚나무 1440여 그루를 한꺼번에 심었다. 이후 1886그루의 벚나무와 더불어 진달래와 개나리, 철쭉, 조팝나무, 말발도리 등 13종 8만7000여 그루의 봄꽃이 만개해 2005년부터 해마다 3월말에서 4월초 여의도 봄꽃축제가 열렸다. 올해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중단된 지 3년 만에 여의도벚꽃축제도 다시 열린다.

왕벚프로젝트를 첫 발의하고 사무총장을 맡은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은 이처럼 뒤늦게나마 ‘벚꽃 해방’ 캠페인을 펼치게 된 계기는 왕벚나무 원산지를 둘러싼 한·일 학계의 논쟁이 110여년 만에 마무리된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2018년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명지대·가천대 연구팀은 유전체(게놈)를 완전히 해독해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별개의 종(種)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제주 왕벚나무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산벚나무를 부계로 해서 탄생한 자연 잡종이고, 일본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오오시마 벚나무를 부계로 해서 수 백년 전 인위적인 교배로 만들어진 잡종이다’라고 확인한 것이다.

“이미 알려진대로, 제주 왕벚나무는 프랑스인 선교사인 에밀 타케 신부가 1908년 한라산 관음사에서 자생하는 것을 발견해 유럽 학계에 가장 먼저 보고했어요. 그보다 앞서 1901년 일본 도쿄의 우에노공원에서 새로운 벚나무가 발견됐는데, 일본 내에서 자생지를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타케의 표본을 받은 독일 베를린대 쾨네 박사가 1912년 한국과 일본에서 발견된 두 나무 똑같은 왕벚나무이고, 그 자생지는 제주도라고 발표했어요. 하지만 일본 학계에서는 내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우리 자생종 왕벚나무마저 ‘왜색’이란 누명을 오랫동안 써온 셈이죠.”

현 소장은 “제주도 자체적으로 봉개동 왕벚나무의 겨울눈을 활용해 조직 배양한 묘목 9000여 그루를 한라산 일대에서 키우고 있기도 하지만 전국적인 보급을 위해서 대규모 번식 작업도 장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재발견 식물탐사대’ 회원 등으로 현 소장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신 회장은 “개인적으로 왕벚나무를 연구해 본 경험은 없지만, 김창렬 전 한국자생식물원장, 박노정 온누리식물원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나무 박사’이자 생태운동가이다.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에서 생태학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90년부터 2012년까지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재직하며 기후변화협약·생물다양성협약·사막화방지협약 관련 국제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2014년까지 국립수목원장을 지낸 뒤 동양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생명의숲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전문 연구 저서말고도 에세이집 <다시, 나무를 보다>,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과 어린이 그림책 등을 통해 대중들과 친숙하게 소통하고 있다.

“예천에서 살던 어린시절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생물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에서 나눠준 낙엽송 묘목이 너무 예뻐서 찰흙으로 뿌리를 감싸줬는데 오히려 숨통을 막아 죽어버린 충격으로 나무를 사랑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죠. 그래서 주변 반대에도 임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이어 신 회장은 왕벚나무에 얽힌 개인적인 인연을 들려줬다. ‘식물분류학의 대가’ 고 이창복(1919~2003) 서울대 교수의 마지막 제자에 속하는 그는 “정년퇴직 이후에도 은사님께서 이끌던 한국자생식물연구회를 따라 답사를 많이 다녔어요. 그때 은사님께서 해남 두륜산의 왕벚나무를 직접 분류·감정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는데 이후로도 계속 자생종이 맞는지 노심초사하셨어요. 다행히 최근 유전자 분석으로 한라산과 또다른 우리 고유종으로 확인이 됐지요.”

그는 “인간은 자연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이자 자연이란 무대의 배우일뿐”이라고 하셨던 은사님의 순수한 학자적 양심을 따르는 자세로 ‘벚꽃 해방’에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1.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동성혼 막은 거룩한 나라로” 예배 가장한 혐오…도심에 쏟아졌다 2.

“동성혼 막은 거룩한 나라로” 예배 가장한 혐오…도심에 쏟아졌다

‘친윤의 한동훈 낙마 프로젝트’ 유포자 5명 검찰 송치 3.

‘친윤의 한동훈 낙마 프로젝트’ 유포자 5명 검찰 송치

김수미 사망 원인 ‘고혈당 쇼크’…조기치료 않으면 심정지 4.

김수미 사망 원인 ‘고혈당 쇼크’…조기치료 않으면 심정지

핼러윈 앞둔 이태원…참사 현장엔 국화, 바나나우유, 와인, 초콜릿 5.

핼러윈 앞둔 이태원…참사 현장엔 국화, 바나나우유, 와인, 초콜릿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