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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권력 비판 ‘풀뿌리 언론’이 백지 1면 낸 까닭은…

등록 2021-06-02 04:59수정 2021-06-02 09:27

주민들이 만든 ‘은평시민신문’
구청 계도지 예산 문제제기 이어
부구청장 과잉의전 등 비판 보도

구청서 보복성 압박 나서
광고 중단·보조금 지원 보류에
통장 가압류·정정보도 소송까지

신문 비대위 “탄압 중단” 1인 시위
1일 오전 <은평시민신문> 이사가 은평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모습. 김효실 기자
1일 오전 <은평시민신문> 이사가 은평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모습. 김효실 기자

“우리 은평(지역)이 안 좋은 일로 이슈가 되면 안 되는데….”

1일 오전 서울 은평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던 김영운(57) 은평시민신문협동조합 이사가 <한겨레> 기자를 보며 한숨처럼 읊조린 말이다. 1993년부터 은평구에 산 그는 지역에 대한 애정, ‘풀뿌리 민주주의’와 ‘좋은 언론’에 대한 갈망으로, <은평시민신문> 창립 초기에 합류했다. 은평시민신문은 2004년 지역 주민이 모여 만든 ‘풀뿌리 언론’으로, 2014년에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인터넷신문으로 시작해, 2009년 말부터는 격주로 종이신문도 낸다. 김 이사는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든 일은 많았지만, 동네 구청 앞 시위는 처음”이라며 “최근 구청이 힘 약한 지역언론을 상대로 지나친 대응을 한다고 생각해 목소리를 내려고 나섰다”고 말했다.

■ 지자체 비판한 ‘풀뿌리 언론’이 맞은 위기

구청 앞 1인시위는 지난달 4일 풀뿌리 언론들이 모여 만든 ‘은평구청 언론탄압 대응 비상대책위원회’(대책위)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구청이 신문을 상대로 통장 가압류, 정정보도 청구 소송 제기, 광고 중단, 마을기업 보조금 지원 보류 등을 잇달아 결정하자, 이를 보다 못한 바른지역언론연대 등 다른 풀뿌리 언론들과 지역단체들이 힘을 모은 것이다.

구청 쪽은 “(신문에 대한) 은평구의 일련의 조치사항은 구민에게 진실을 알리고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기 위해서” 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은평시민신문이 지난해 10월 ‘부구청장 위해 새벽 출근하는 공무원…과잉 의전 논란’이란 제목의 비판 보도를 하자 구청은 반론보도 등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청구했다. 기사는 강남에 사는 부구청장의 출퇴근에 관용차량과 전담 운전직 공무원을 배치한 의전 관행 실태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조정을 거쳐 ‘반론보도문’ 게재를 합의했는데, 신문이 반론보도를 하면서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누락한 실수가 문제가 됐다. 신문이 같은 해 12월 ‘운전원에 출장여비 지급 가능할까?’라는 비판 보도를 한 데 대해서도 구청은 5차례 정정보도를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은평구청 입장문 전문 보러 가기)

<은평시민신문>의 반론보도문. 최초에 실을 때는 마지막 한 문장을 실수로 누락했다. <은평시민신문>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은평시민신문은 반론보도 과정에서 실수를 한 터라 처음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지난달 구청이 서울시·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사업’에 선정된 은평시민신문협동조합에 대해 사업비 집행을 보류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은평시민신문은 지난달 24일치 신문 1면을 백지로 발행하며 “은평구청의 언론탄압에 항의”했다.

대책위는 이런 상황을 구청의 ‘보복 행정’이자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한다. 은평시민신문이 창간 이래 구청·구의회 등 지역권력에 대한 비판 보도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주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는지’에 대한 풀뿌리 언론의 감시는, 2018년부터 ‘계도지’ 예산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계도지는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고자 통·반장에게 ‘정부 친화적’ 신문 구독을 지원해준 데서 비롯된 관행이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계도지 예산을 합하면 110억여원에 달한다(<미디어오늘> 집계, 2020년 기준).

계도지 비판 보도는 재정이 열악한 지역언론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편집장이 되고 2013년 처음 구청의 계도지 예산을 알았을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언론들이 왜 ‘구청 보도자료 베껴 쓰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다 보니, 계도지가 ‘관언유착’을 통해 지역언론 생태계를 황폐화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5월24일 발간한 &lt;은평시민신문&gt; 1면. &lt;은평시민신문&gt; 제공
지난 5월24일 발간한 <은평시민신문> 1면. <은평시민신문> 제공

■ 공적 지원 필요하지만…합리적 기준 필요

은평시민신문은 계도지 문제를 보도한 뒤인 2019년부터 월 100만원을 웃도는 재정적 이익을 포기해야 했다. 구청이 계도지 자체는 폐지하지 않으면서, 은평시민신문 몫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박은미 편집장은 “지역신문이 생존하고 언론다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도지 같은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21일 은평구청이 은평시민신문의 계도지 비판 보도와 관련해 내놓은 ‘설명자료’를 보면, 구청은 “통·반장의 편익 제공 및 구정의 시책과 사업을 알리고 타 자치구 우수사례 벤치마킹 등을 위해” 관련 예산을 편성한다. 또한 구독 신문 선정 기준으로는 “구정 홍보 효과”가 주요하게 고려된다.

지역언론 활동가·전문가 등은 은평구의 사례를 통해 “제대로 된 지역신문 지원을 위한 체계적인 대안 마련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역언론 지원에 있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홍보지’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지원은 하되 언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은평시민신문이 일부 실수한 부분이 있지만, 구청이 재정적으로까지 압박하는 건 감정이 섞인 과한 대응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경남지역 계도지 폐지를 이끌어낸 강창덕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은 “소수의 ‘사이비 언론’이 지자체에서 광고 강매를 거부할 경우 악의적인 정보공개 청구나 비판 보도를 했다가, 광고비를 받은 뒤 물러나는 등의 문제는 여전히 있다”면서도 “경남은 2010년 ‘지역신문발전지원조례’를 만들어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 언론을) 심사하고 있다. 그동안 ‘우선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언론 가운데 광고를 강매한다든지 하는 문제를 일으킨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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