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9기 열린편집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내년 1월까지 활동하는 9기 위원회는 <한겨레> 콘텐츠에 대한 평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창구 구실을 하게 된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의 9기 열린편집위원회가 출범했다. 열린편집위원회는 <한겨레>의 모든 콘텐츠를 독자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 창구 구실을 하게 된다.
시민편집인을 겸하는 열린편집위원장은 김민정 교수(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가 맡아 1년간 열린편집위원회를 이끈다. 언론법과 언론 윤리를 전공한 김 교수는 언론 보도의 혐오 표현 등을 연구하는 미디어 학자다.
청년 정치·정책 활동가를 양성하는 섀도우캐비닛의 김경미 대표,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공직과 기업 경험을 두루 갖춘 김준범 한라홀딩스 부사장,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서 활동한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장애인 이동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컨텐츠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좋은 일의 기준’을 연구하는 황세원 일인(in)연구소 대표도 9기 열린편집위원회에 합류했다. 세대별로는 20대 1명, 40대 5명, 50대 1명이고, 성별로는 여성 5명, 남성 2명으로 구성됐다.
9기 위원회의 첫 회의는 지난 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렸으며, 이봉현 저널리즘책무실장, 김영희 총괄부국장, 최혜정 소통·혁신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열린편집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한겨레> 창간사, 30주년 당시 세미나 자료, 예전 열린편집위원회 기사 등을 살펴봤다. 이들 자료를 보면서, ‘한겨레는 사랑받는 언론사’라는 생각을 했다. 한겨레를 사랑하는 분들을 대신해, 한달에 한번씩 이 자리에 와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책임감이 크다. 애정을 갖고 할 말은 꼭 하려고 한다. 첫 회의를 하는 자리이니 특정 영역을 논의하기보다는, 전반적인 한겨레 보도와 편집 방향에 대해 자유로운 의견 부탁드린다.
김경미 최근엔 ‘<한겨레> 하면 딱 떠오르는 기사나 기자’가 부재했다. 주요 이슈와 관련해, 오피니언을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그저 팩트 전달에 그친 것 같다. 정치인의 발언이나 정당의 정책에 대해 좀 더 질문하고, 파고드는 기사가 있어야 하는데 보통 “이랬다”로 끝나서 아쉬웠다. 예를 들어 이익공유제 이슈와 관련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선의에만 기대는 제도가 실현 가능한가,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데 왜 정부는 이 이야기를 할까, 그리고 왜 이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한겨레>가 이런 질문을 하고,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받아적는 느낌이 강했다. 또 코로나19 관련한 정부의 영업제한 조처에 대한 보상 체계가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한겨레의 보도 역시 늦었다. 국민청원에 올라간 다음 언론이나 정치도 따라갔다. 미리 해외 사례 같은 걸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어젠다 세팅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정치, 검찰개혁 이슈에 많이 몰려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국제 뉴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 중심이거나 해외 화제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 장기적 주제이긴 하지만, 외교·국제면 기사를 늘렸으면 한다.
임자운 ‘조국 사태’, ‘윤미향 이슈’, ‘추미애-윤석열 갈등’ 사태 등을 겪으며, 우리 언론이 독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인상적으로 느낀 시점은 지난해 3월께, 윤미향 민주당 의원이 신문들의 1면을 도배할 때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가 의미는 있으나, 이렇게나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와중에 <제이티비시>(JTBC)가 어느날 첫 꼭지부터 다섯번째까지 산업재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우리 언론이 봐야 할 곳은 여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겨레는 조국, 윤미향, 추-윤 갈등 기사 광풍 등이 이어질 때 다른 곳을 조명하는 적극성을 보여줬나 하는 의문이 든다.
김보림 저는 조금 긍정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그간 언론이 기후변화 문제를 보도하는 것을 보면 왜곡이 걱정되는 기사가 굉장히 많았다. 작년에도 청소년들이 행동에 나선다고 하니, 문제의 본질에 주목하기보다는 ‘기특하다’ 또는 ‘학교 안 가서 어쩌냐’ 등의 이야기만 다뤄졌다. <한겨레>에서 기후변화팀이 신설됐다고 했을 때, 반가웠지만 우려도 됐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다뤘으면 하는 논의를 재빠르게 보도하는 점이 좋았다. 이 외에 낙태죄 폐지 관련 기사와 아카이브 페이지도 인상깊었다.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이들도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김민정 한겨레가 젠더데스크를 언론사 최초로 설치했다. 젠더 보도는 한겨레가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널리즘책무실도 다른 언론사에 없는 자리인데, 윤리적인 언론이 되겠다는 한겨레의 입장이나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오피니언면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 좋은 기사로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오피니언면에 있었다. 다른 언론보다 다양하게 오피니언면이 채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세원 회의에 오기 전, 2주치 <한겨레> 종이신문을 샅샅이 읽었다. 오피니언면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오피니언과 기사가 따로 가는 느낌이 있다. 오피니언면과 달리 기사는 어떤 색깔을 볼 수 없다. 그냥 중립으로 쓴 느낌이다.
홍윤희 백소아 기자의 서울역 사진 기사(“
커피 한잔” 부탁한 노숙인에게 점퍼, 장갑까지 건넨 시민) 기사가 아주 좋았다. 다만, 이런 사진을 취재한 기자의 전작들, 기사에 영감이 된 것들을 짚어주는 또 다른 보도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겨레>는 역사도 있고, 맨파워도 있고, 기자들 스스로 쌓아온 전문성도 있다. 기사를 쓸 때 본인의 전작들을 함께 링크해주면 어떨까. 타사와 차별화된 깊이 있는 콘텐츠 기반이 될 수 있고, 구성원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임자운 언론에 대해 가졌던 고민 중 하나는 정말 좋은 기사가 많지만 ‘안 팔린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사에 대해 한겨레는 두가지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그럼에도 계속 좋은 기사를 쓰게 하는 회사의 지원이다. 둘째, 잘 팔리도록 회사가 고민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한겨레>는 첫번째 관점은 유지하는 것 같지만, 두번째에 대해선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들 종이신문을 안 본다. 디지털 콘텐츠를 얼마나 확장성 있게, 잘 팔리게 할지 회사가 고민해야 하는데 다른 언론에 비해 <한겨레>는 그런 고민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김준범 말씀하신 것처럼 종이신문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결국 디지털로 향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편집 방향 등에 대한 고민도 필수적인 것 같다. 뉴스를 접하는 채널이 포털도 있지만, 가까운 지인이 공유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경우도 많다. 항상 어떤 이슈든 양극단으로 치우친다는 느낌이 든다. <한겨레>와 같은 정통 미디어가 그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영희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최근 편집국에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들과 많이 맞닿아 있다. 오피니언과 기사가 따로 간다는 의견과 관련해, 조금 기술적인 부분만 설명하면 오피니언은 분명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데, 기사에선 관점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 ‘기사는 칼럼이 아니다’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오히려 확실한 무언가를 원한다. ‘받아적는 느낌’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 기사가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팩트를 쌓아가며 전달하되 어떻게 관점과 색깔을 드러낼 것인가 논의를 많이 해보려고 한다.
기자가 자신의 취재 이력까지 담아내면 좋겠다는 의견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인데 참고가 크게 될 것 같다. 디지털 쪽은 비용과 전문가의 부재라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계속해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국제 기사와 관련해, 우리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국제 기사가 점점 빈약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 국제부는 예전에 비해 크게 인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경미 2019년부터 느낀 점이 있다. 이른바 ‘충성 독자’들과 새로운 세대가 바라보는 <한겨레>에 대한 관점이 크게 충돌하고, 또 여과 없이 표현이 된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한겨레를 공적 토론을 할 수 있는 담론장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 같은 이슈가 있을 때, 일부에서 ‘우리가 어떻게 <한겨레>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쓰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글을 보고 있으면, ‘그래서 새 세대는 조용히 하라는 것’인지 답답했다. 최근 한겨레 젊은 기자들이 성명을 냈고, 이와 관련한 논란 기사도 봤다. <한겨레>가 독자들이 누군가에게 판단받지 않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황세원 젊은 세대의 ‘일’을 연구하다 보면, 전통적인 ‘노동’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생긴다. 사회도 다원화됐고, 세대가 같더라도 각자 생각과 환경이 모두 다르다. 또 세대 간의 경험도 크게 바뀌고 있다. 예컨대 고도성장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을 나와 취업한 세대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뭔가 불안한 상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공부한 세대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다. 각자 자신을 ‘진보’라고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 최근 <한겨레>에서도 이런 문제가 본격화된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내가 여기서 느끼고 판단하고 경험한 것들로 바로 소통하고 의견을 말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다. 물론 선배들에게 배우고도 싶어 한다. 단신이나 스트레이트 기사 대신 기획기사 비중을 더 높이고, 언론 시스템의 층위를 바꾸는 시도를 하면 오히려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임자운 결국 관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사가 관점을 안 가질 수는 없다. 그 관점을 얼마나 책임 있게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다. 관점을 지향하지만, 얼마나 사실에 기반해서 취재를 열심히 했는지, 그런 것들이 기사를 통해 설명이 되면 된다. 또 이번 문제는 관점에 있어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 관점이 한겨레 내부에서 어떻게 민주적으로 형성되고 유지됐나의 문제다. 현장과 데스크 간에 얼마나 민주적인 소통이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김영희 인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한겨레>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이 사회의 진보에 대해 고민하고, 나아가는 큰 방향에는 공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편향성이 심해지는 시대에 어떻게 현명하게 공론장을 마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현장 기자들의 성명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라고 생각한다. ‘잘 듣겠다’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걱정되시겠지만, 언젠가는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이봉현 편집국에서도 기자들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마련하려고 한다. 또 장기적으로 한겨레의 가치, 윤리, 관점을 공유하는 기획들을 해나갈 예정이다.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외부 저널리즘 전문가들과 자리를 만들어가면서 추진하려 한다.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녹취 설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