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구성을 앞두고 언론계와 정치권에서 날 선 비판이 줄을 잇는다. 열쇳말은 ‘정치적 독립성’이다. 방심위는 방송·통신 내용을 사후 심의·규제하는 공적 기구로, 방심위원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공공성·공정성을 우선해야 한다. 지난 14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적 이력을 앞세운 인사,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에 발맞춰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한 인사를 방심위원으로 추천하려는 정치권을 비판하고 나섰다.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연합뉴스> 대주주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진 교체를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가 정부 추천 이사 후보에 올라 <연합뉴스> 안팎에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영 성격의 언론 관련 인사가 올해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점이다. <한국방송>(KBS) 이사진·사장,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교육방송>(EBS) 이사진, <와이티엔>(YTN)·<연합뉴스> 사장 등의 임기가 모두 올해 끝난다.
현재 공영 성격 언론의 지배구조 제도는 집권세력에 유리하다. 국가기간방송인 한국방송 이사회의 경우 이사장을 포함해 11명으로 이뤄지는데, 관행상 여권이 7명, 야권이 4명을 추천해왔다. 방문진도 이사장을 포함한 9명 가운데 여권이 6명, 야권이 3명을 추천한다. 두곳 모두 재적 이사 과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어서, 여권 추천 인사들만 뜻을 모으면 한국방송·문화방송 사장을 선임할 수 있다. 제도 개선 없이는 ‘언론 장악’과 ‘정치적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이 일년 내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었으나, 이명박 정권에 이은 ‘언론 장악’만 심화한 채 정권이 교체됐다. 촛불항쟁에서 표출된 언론개혁 열망을 안은 문재인 대통령 역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수차례 약속했다. 언론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비롯한 ‘밀실 인사’ 관행이 사라질 기회라는 기대감이 고조됐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초기 한국방송·문화방송 사장 선임 때 ‘시민자문단’ ‘국민면접’ 형태로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추가됐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한국방송·문화방송·교육방송 이사 후보를 공개 모집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공영 및 공영적 언론사 경영진 교체 과정에서 이전 정권에 비해 개입을 자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그럼에도 공영언론의 불공정 편파 보도 시비가 이전 정권보다 개선됐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공영언론 이사진이 집권세력에 편중되게 구성되는 지배구조의 정치 종속 문제를 제도적으로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이 정부가 제도·조직을 개혁하는 대신 ‘이 정도 인사면 문제가 없겠다’ 싶은 인사 중심 개혁에 그치는 게 언론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며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공세나 편향성 논란이 거세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정부·여당이 앞장서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의해 방송법 개정안 처리 시한을 정해두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현실화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사 추천을 정치권에 맡길지 국민 참여를 늘릴지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를 설치할지 등의 각론을 놓고 여야와 언론시민단체의 의견이 엇갈렸고, 결국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모든 관련 법안이 폐기됐다.
21대 국회에는 정필모·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 등이 계류 중이다. 민주당에서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정치권에 맡기는 대신 국민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국민의힘에서는 관행인 정치권 추천을 명문화하는 대신 여야 균형을 맞추는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정필모 의원은 “저는 민주당이 집권당일 때 정치적 후견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시민단체는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국민 참여를 실질화·일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공영언론 지배구조의 문제가 이사·사장 선임 등 인사 문제에만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 공영언론에 어떤 책무를 부여할 것인지, 시민들이 일회적·도구적 참여를 넘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공영방송에 대한 의미 규정조차 없는 상황이다. 20대 국회 때 김성수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통합방송법안도 오티티(OTT) 얘기만 하다 끝났다. 미디어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6월까지 공영방송 임원선임 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공영방송사 임원 임명에 관한 기본계획’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새로운 입법이 아닌 기존 법 틀 안에서 재량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손보는 정도라 갈등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이와 더불어 올해 방송법 전반을 손보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법 제정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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