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저널리즘과 미디어 정책을 담당하는 김효실 기자가 미디어 보도의 뒷이야기를 나눕니다.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 내렸습니다.” 7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한 말입니다. 담화 당시 저는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사옥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한국방송 구성원들이 길환영 당시 한국방송 사장의 출근을 막으려고 진을 친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죠. 이들은 당시 보도국장이 “사장에게서 ‘해경 비판하지 말라’ ‘청와대 요청이니, 국장직을 관두라’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했는데도, 일말의 사과 없이 버티는 사장에게 항의 중이었습니다. 저는 문득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이런 싸움이 계속된다면, 박근혜 정부가 어느 날 불시에 “고심 끝에 공영방송을 모두 해체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상상인데,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허다했던 당시에는 진지했죠.
서울 마포구 상암동 티비에스 건물의 2017년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최근 “김어준과 티비에스는 서울시민의 이름으로 폐지되고 해체되어야 한다”는 일부 야권 정치인의 주장을 들으며 데자뷔를 느낀 게 저 혼자만은 아닐 겁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야권에서 서울지역 공영방송인 <티비에스>(TBS)와 티비에스의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뉴스공장)의 정치 편향성이 과하다고 주장하며, 프로그램 ‘폐지’와 방송사 ‘해체’를 공약으로 내놓은 건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티비에스지부, 한국피디연합회 티비에스피디협회, 한국피디연합회에서 잇달아 비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방송사나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폐지나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건 헌법과 방송법에서 보장하는 방송의 독립성·공공성을 침해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니까요. 한마디로 ‘선을 넘었다’는 거죠.
<뉴스공장>이나 티비에스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에 문제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13일 오후)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방송소위원회의에서는 <뉴스공장>과 관련한 심의 3건이 진행 중입니다. <뉴스공장>의 내용이 방송심의규정상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유지 의무에 어긋나고 지나친 조롱·희화화로 문제가 있다는 민원은 끊이지 않습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교통방송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뉴스공장>, 그리고 이와 비슷한 포맷의 다른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토크쇼’에 관한 저널리즘적 영향과 개선 방안은 민주적 토론을 해야 할 주제입니다. <뉴스공장>에 제기되는 비판은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시청자를 설득하며, 공손한 관계 속에서 공식적인 발화 스타일을 사용하던 기존 방송 저널리즘의 담화양식에서 벗어난”(박지영·김예란·손병우 논문 ‘종편 시사 토크쇼와 사담의 저널리즘’) 방송 프로그램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공장>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야권 정치인들은 토론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편 가르기’로 정쟁화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이런 퇴행적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을 일부러 쓰지 않았습니다. 대놓고 ‘해체’니 ‘구속 수사’니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은 대부분 인지도·지지도가 낮은 정치인입니다. 언론에 대한 초법적인 공격으로 뉴스에 이름을 올리기보단, 서울시민에게 득이 되는 비전과 정책 공약 제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경쟁력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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