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독과점하던 방송시장에 종합편성채널(종편) 등이 뛰어들며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열렸지만, 콘텐츠의 다양화라는 기대와 달리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도 볼 게 없다”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여전하다. 올해로 세번째 재승인 심사를 받은 종편은 불법과 불공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지상파는 이들과의 비대칭 규제 해소를 촉구하며 분리편성 광고로 시청권을 침해하고 있다. 여기에 가짜뉴스인 허위조작정보가 쏟아지고 방송통신 융합의 오티티(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급부상해 법체계 정비도 절실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여러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듣기 위해 지난 1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이효성 전 위원장의 사퇴 뒤 올해 7월까지 잔여 임기를 마무리한 뒤 연임돼 8월부터 3년 임기의 5기 방통위를 이끌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종편 재승인 제도의 개선 필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미디어 공공성 강화’에 역량을 집중했다.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 그는 “종편 등 보도를 하는 방송들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적 책무 준수가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미디어 환경이 어려워지고 경영에 문제가 생기자 공공성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맞아 방송이 왜 필요한지, 공적 책무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이 공감하고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며 “재난 관련 가짜뉴스에 관해 방송사가 팩트체크하거나 여름 호우 피해 때 지역 맞춤형 보도로 <한국방송>(KBS)이 재난방송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편의 공적 책무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방통위가 자본금 불법 충당이 확인된 <엠비엔>(MBN)에 대해 ‘6개월 업무정지’ 행정처분에 이어 조건부 재승인을 결정하자, 언론시민단체는 “종편 봐주기”라며 직무유기를 성토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통위의 책임을 묻겠다며 국민감사청구 추진에 나선 상태다. 한 위원장은 “한쪽에선 ‘명백한 위법 사항인데 왜 취소를 안 했냐’고 하고, 또 한쪽에선 ‘방송사를 6개월 정지시키면 망하라는 것이냐’며 과하다는 주장을 했다. 방통위는 합의제 기관으로 종합적 고려를 했다. 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내린 결론”이라고 항변했다.
또 다른 종편 <제이티비시>(JTBC)는 재승인 심사에서 보도본부 기자 대다수가 모기업인 <중앙일보> 소속인 것으로 드러나 방송 공정성과 독립성 훼손 우려가 제기됐다. 방통위는 그동안 다른 종편에도 인력 넘나들기 문제를 해소하라며 소유-경영 분리를 권고해왔다. 제이티비시는 파견 규모나 방식이 더 심각해 해소 방안을 3개월 안에 제출할 것 등을 조건으로 부과했다. 그는 “종편에 모기업인 신문사와 인력을 구분하라는 것이 일관된 방향이었다. 앞으로 점검을 계속할 예정이다.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종편 재승인 제도의 개선 필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조건부 재승인을 받은 종편들이 방송 품질 제고나 공적 책무 개선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하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나오는 것에 한 위원장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재승인 제도 취지는 문제점을 개선해 부여된 책무를 잘 이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심사위원들도 그런 점을 고려해 종합적 의견을 준다. 방통위가 이를 참고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지만 최근 미디어 상황이 바뀜에 따라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며 “종편·보도채널 등에 대해 허가냐 등록이냐도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현재 등록제로 시장 경쟁을 하는 <티브이엔>(tvN) 등 일반 채널과 달리 종편은 정부 승인이 필요한 허가제로, 선발 자체가 특혜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보수신문의 종편 소유로 인한 여론 독점을 비판해온 일부 학자들은 종편을 등록제로 바꿔 여론 지형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광고매출 급감으로 위기에 봉착한 지상파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를 내세워 비대칭 규제 해소를 촉구하고 있다. 중간광고 허용을 압박하며 프로그램을 2~3부로 쪼개는 분리편성 광고(피시엠)가 번져 시청권 훼손 논란도 불거졌다. 그는 “4기 방통위에서 지상파 비대칭 규제 논의는 일부 진전이 있었다. 지상파가 피시엠이라는 변칙적 광고를 해 시청자가 불편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비대칭 규제와 시청권 해소를 동시에 추진하는 해법을 모색 중”이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공영방송의 근본 재원인 수신료를 인상하는 문제에는 공감을 표했다. 한 위원장은 “공적 책무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수신료 등 공적 기금으로 마련해주는 것이 맞다. <한국방송>의 현실화 요구에 공감한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진영 간 찬반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현실화 추진을 어렵게 한다. 방송사가 자구노력은 물론 공적 책무 수행을 통해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은 이사회에서 이달 안에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다.
정권의 낙하산 사장을 저지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한 의견은 뭘까? 최근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이 사장과 이사를 추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 참여 폭을 넓히고 정치적 의존성을 완화하는 안에 동의한다”면서도 사장 후보자 임명 제청의 경우 이사회 재적 위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특별다수제’에 대해선 “입법화 과정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기대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는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오티티도 주목하고 있다. “넷플릭스 등 오티티 플랫폼이 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레거시 미디어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현재 방송법 체계는 몸에 안 맞는 옷이 됐다. 바뀐 미디어 환경에 맞게 법·제도 개선으로 뒷받침하겠다.” 방통위를 비롯해 정부 부처가 오티티 정책협의회를 가동하며 토종 오티티 지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결국 핵심은 콘텐츠다. 한 위원장은 “본질은 콘텐츠 경쟁력이다. 세제 지원 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 생산 역량과 국내 오티티가 연대해 시너지를 어떻게 극대화할지가 관건”이라고 역설했다.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는 지난해부터 언론개혁을 위한 미디어개혁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해왔다. 미디어 환경에 대한 규제와 지원의 내용을 재점검하고 시대 상황에 걸맞은 미디어 시스템을 조성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그는 “미디어개혁 기구엔 공감한다. 국회에서 방향성 논의가 나오면 방통위도 적극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