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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온라인 어딘가엔 남겨진 ‘자기정보' 결정권

등록 2020-12-15 17:23수정 2020-12-16 02:37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몇년 전 영화이긴 한데 ‘자기정보결정권’ 문제를 생각해볼 만한 것으로 이만한 게 없다 싶어 수업에 자주 활용하는 영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시선 너머> 중 한 편인 <백문백답>. 성폭행 피해자인 여자 주인공이 오히려 꽃뱀으로 몰리는 상황을 아프도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예측 가능한 편견 속에 여주인공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뒤바뀌는데, 이때 증거로 제시되는 자료가 각종 개인정보다. 금융권 대출 정보를 비롯해 시시티브이(CCTV) 자료, 그리고 뿌리 깊은 성차별적 평판과 해석 등. 이들 정보는 개별적으로 존재할 때는 정보주체를 특정할 수 없는 원자료(raw data)일지 몰라도 의도를 갖고 조합되고 가공되는 순간 한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파괴하는 괴물 정보가 돼버린다.

영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 중 하나인 데이터 레이블링(전처리·data labelling)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다. 보도는 대체로 두 흐름이다. 인공지능 관련 일자리라는 것이 고작 ‘인형 눈알 붙이기’에 가까운 디지털 막노동이라는 비판이 그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원유에 해당하는 데이터란 원래 그와 같은 사전처리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고, 이 단계를 지나고 나면 상상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다는 전문가적 견해를 담은 것들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제안 중 하나가 데이터 가공을 이해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게끔 도와주는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의 보급이다. 때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데이터 리터러시 관련 예산을 대폭 증액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쉬운 것은 데이터 리터러시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이나 보도 내용 중 어디에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스스로 제공해온 데이터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자기정보결정권’ 이슈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중 상당수는 온라인 공간에 제공하는 개인정보가 정보사회의 편익과 혜택을 누리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수업료라고 여긴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했던 올해는 특히 개인정보가 담긴 각종 디지털 흔적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제공한 한해였다. 수많은 인터넷 이용과 결제내역, 핸드폰 위치정보와 각종 시시티브이 자료가 온라인 서버 공간 어딘가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다. 그뿐인가. 맛집 정보부터 상품평, 각종 댓글에 이르기까지 감정적 요소가 녹아 있는 정보도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다. 이들이 바로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좋은 상태로 가공하기 직전의 원자료들이다.때문에 최근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의 화두 중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기반을 둔 연구자 팽그라치오(Pangrazio)와 셀윈(Selwyn)이 주도하는 비판적 관점의 데이터 리터러시의 강조다. 이들은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수리적 가공에 몰두하는 데이터 리터러시를 비판하면서 데이터 생산과 흐름에 대한 개인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가령 나는 어떤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그 데이터는 어떻게 쓰이는지 인지하는 것, 내가 제공한 데이터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윤창출에 동원되는지 파악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개인정보의 권리와 책임 범위를 파악하고 결정하는 능력의 중요성이다. 알고리즘의 확증편향을 이해하고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능력 못지않게 데이터 흐름과 활용을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가 엄중해도 개인정보보호와 자기정보결정권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됐다는 의미다.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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