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손자 이든에게 할머니가 주는 글
지난 11월 손자 정이든의 웃는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해 온가족이 합심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고은광순씨 제공
법륜 스님 ‘생명 존중’ 말씀 따라
백일잔칫상 채식 위주로 준비
“총 들지 않는 세상 만들어 주리” 반갑다 이든아. 드디어 할매가 되었다! 지난 7·27일 정전협정일을 맞아 여성 평화활동가 20여명과 함께 강화도 교동을 찾았다. 북녘 땅이 보이는 산에 올라가 우리가 쓴 종전선언문을 낭독했다. ‘방구가 잦으면 뭐 싼다’고 해마다 기회 있을 때 북녘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우리들끼리 '종전방구'를 뀌던 참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데 전화가 울렸다. 둘째아들이 아들을 낳았다며 막 낳은 아기 동영상을 보냈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산이 시끄러워 얼른 동영상을 끌려고 하는데 뭘 눌러야 꺼지는지 몰라 한참 허둥댔다. 그 아기가 11월에 백일을 맞았다. 아기가 태어난 뒤 남편은 생년월일을 단단히 챙겨 거금을 내고 작명가에게 이름을 여러 개 받아왔는데 둘째 부부는 ‘올드하다’며 거부하고 자기들이 지은 이름 ‘이든'을 쓰겠다고 했다. 정이든. 남편은 상심하여(싸우다가 삐져서) 단톡방을 뛰쳐나갔는데 며칠 만에 둘째아들에게 ‘덜미'를 잡혀 다시 들어왔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겠냐며 머쓱하게 단톡방에 눌러앉는 남편에게 나는 ‘가출하면 개고생'이라고 점잖게 일러주었다. 둘째네 가족이 남편과 집을 합치기로 해서 집들이겸 11월 들어 양가 식구만 모여 조촐한 백일잔치를 준비했다. 어디선가 읽은 글인데, 아기 잔치에 초대받은 법륜 스님이 축하 말씀 하는 자리에서 음식상을 둘러보고는 “내 자식 생명 얻은 것을 축하한다며 남의 생명은 이렇듯 잡아먹느냐” 하셨다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하여 상차림은 채식 위주로 준비했다. 대신 사진이 잘 나오게 꽃김밥을 유튜브에서 배워두었다. 아쉬워할 이를 위해 육류로는 훈제오리를 약간 준비했다. 스팸 한 통 추가. 같은 재료로 크게 두 접시를 마련했다.
이든이의 백일상을 채식 위주로 차리느라 사돈들까지 함께 만든 꽃김밥. 사진 고은광순씨 제공
연재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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