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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향해 ‘종전’ 기원하던 날 왔으니 내내 평화의 길 걸으렴”

등록 2020-12-03 20:51수정 2021-01-04 16:25

[축하합니다] 손자 이든에게 할머니가 주는 글
지난 11월 손자 정이든의 웃는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해 온가족이 합심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고은광순씨 제공
지난 11월 손자 정이든의 웃는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해 온가족이 합심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고은광순씨 제공

지난 7·27 정전협정일에 탄생
법륜 스님 ‘생명 존중’ 말씀 따라
백일잔칫상 채식 위주로 준비
“총 들지 않는 세상 만들어 주리”

반갑다 이든아. 드디어 할매가 되었다!

지난 7·27일 정전협정일을 맞아 여성 평화활동가 20여명과 함께 강화도 교동을 찾았다. 북녘 땅이 보이는 산에 올라가 우리가 쓴 종전선언문을 낭독했다. ‘방구가 잦으면 뭐 싼다’고 해마다 기회 있을 때 북녘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우리들끼리 '종전방구'를 뀌던 참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데 전화가 울렸다. 둘째아들이 아들을 낳았다며 막 낳은 아기 동영상을 보냈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산이 시끄러워 얼른 동영상을 끌려고 하는데 뭘 눌러야 꺼지는지 몰라 한참 허둥댔다.

그 아기가 11월에 백일을 맞았다. 아기가 태어난 뒤 남편은 생년월일을 단단히 챙겨 거금을 내고 작명가에게 이름을 여러 개 받아왔는데 둘째 부부는 ‘올드하다’며 거부하고 자기들이 지은 이름 ‘이든'을 쓰겠다고 했다. 정이든. 남편은 상심하여(싸우다가 삐져서) 단톡방을 뛰쳐나갔는데 며칠 만에 둘째아들에게 ‘덜미'를 잡혀 다시 들어왔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겠냐며 머쓱하게 단톡방에 눌러앉는 남편에게 나는 ‘가출하면 개고생'이라고 점잖게 일러주었다.

둘째네 가족이 남편과 집을 합치기로 해서 집들이겸 11월 들어 양가 식구만 모여 조촐한 백일잔치를 준비했다. 어디선가 읽은 글인데, 아기 잔치에 초대받은 법륜 스님이 축하 말씀 하는 자리에서 음식상을 둘러보고는 “내 자식 생명 얻은 것을 축하한다며 남의 생명은 이렇듯 잡아먹느냐” 하셨다는데 어찌나 공감이 되는지. 하여 상차림은 채식 위주로 준비했다. 대신 사진이 잘 나오게 꽃김밥을 유튜브에서 배워두었다. 아쉬워할 이를 위해 육류로는 훈제오리를 약간 준비했다. 스팸 한 통 추가. 같은 재료로 크게 두 접시를 마련했다.

이든이의 백일상을 채식 위주로 차리느라 사돈들까지 함께 만든 꽃김밥. 사진 고은광순씨 제공
이든이의 백일상을 채식 위주로 차리느라 사돈들까지 함께 만든 꽃김밥. 사진 고은광순씨 제공

꽃김밥은 공력이 많이 들어가 사돈집 처녀총각도 합세했다. 모두 첫 경험이라 이구동성으로 두번 다시는 만들기 힘들겠다고. 아이가 훗날 머리가 커져서 혹시 '삐뚤어질테다' 하며 식구들 속을 썩일 때 이 사진을 녀석의 코 앞에 들이민다면 놈(^^)은 마음을 고쳐먹게 되지 않을까? 오늘의 수고는 내일의 남는 장사다!

이든이의 웃는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해 큰며느리는 아기의 볼을 간질여 웃음을 유도하고 큰아들은 장난감을 부지런히 흔들며 시선 유도, 제 아범은 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아기가 뒤로 기울지 않게 붙잡고 제 어멈은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34년 전, 내가 큰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늙으나 젊으나 문 밖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같이 귀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각성이었다. 부모가 되어야 철이 제대로 든다고 하는 건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진심을 다해 사랑으로 돌볼 때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리라.

내가 두 아들을 낳았을 때, 이 아이들은 군에 가지 않는 세월이 되길 바랐지만 남북 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제 손자는 군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청년들이 총 대신 책과 호미를 잡는 세상이 되기를. 할머니 여생 부지런히 그 평화의 길을 닦아야 하리라.

양가 가족들이 헤어지기 전 이든에게 모두 덕담 한마디씩을 했다. “선한 에너지로 지혜롭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자신과 이웃을 귀히 여기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사랑한다. 이든아. 세상의 모든 아기들아~!.”

할머니 고은광순/아빠 정석윤·엄마 강지은

‘축하합니다’ 원고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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